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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장편 소설 <향수>를 헐리우드식으로 각색한 영화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를 기독교 세계관 안에서 재구성한 글이다. 쥐스킨트의 장편 데뷔작으로 알려진 이 소설은 주인공 그르누이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전 과정을 마치 그리스도의 일대기를 전복시킨 듯한 구조속에서 재구성하고 있다. 그 전복 구조를 스타카토처럼 짧은 형식으로 다시 재구성해 옮겨 보겠다. 길지 않은 글이다. (참고로 헤르메네이아 미문에는 세속 영화를 기독교 세계관 안에서 읽어드리는 영화 읽기 세션을 마련하고 있다.)

향수

탄생

1739년 파리의 한 여름, 악취가 진동하는 시장 좌판에서 만삭의 몸으로 생선을 팔던 한 여인이 그 자리에서 아기를 출산한다. 사생아이다.

그녀는 추호의 망설임 없이 생선 내장 찌꺼기를 모아두는 곳에 아기를 버린다. 이 일로 산모는 영아살해 죄로 처형되고, 아기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고아원을 전전하며 살아남는다.

성장

장 바티스트라 불리는 이 소년에게는 남다른 재능이 있다. 냄새 맡는 능력이다. 어둠 속에서도 냄새나는 정확한 위치를 찾아낼 뿐 아니라, 아무리 먼 곳에서 나는 냄새도 추적해 찾아낼 수 있다.

무두장이가 된 소년은 어느 날 미묘한 향내에 끌려 따라갔다가, 그 향내의 주인인 여자가 화들짝 놀라는 바람에 그만 그녀를 죽이고 만다. 두 번째 살인.

수련

죽은 여성에게 나는 향내를 만끽하느라 죽음의 의미도 미처 인식 못하는 장 바티스트는 그 일이 있은 후 우연히 향수 제조업자 발디니를 만난다. 발디니는 한물 간 향기 예술가이다. 젊은 라이벌이 만든 신제품에 번번이 밀린다.

장 바티스트는 그런 발디니에게 새로운 향 레시피 1,000개를 만들어주는 대신 향을 오래 지속하는 보전 기술을 배운다. 장 바티스트가 향수의 본고장 그라스로 간 날 밤 발디니는 레시피를 끌어안고 꿈에 부풀어 자다가 그만 집이 무너져 죽고 만다. 자기를 낳아준 모친을 포함해 부지중에 벌써 셋이 죽은 것이다.

성찰

그는 그라스로 가는 중에 산에서 목욕을 하다가 그만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한다. 자기에게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놀랍도록 정확하게 냄새를 맡을 줄 아는 능력의 소유자가 정작 자기 자신에게서 냄새가 안 난다는 사실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지상 최고의 향기 만드는 일에 서둘러 박차를 가한다.

성취

지상 최고의 향기 만들어내는 일은 젊은 여성들에게서 향을 채집해 가공하는 일이다. 도시에는 이상한 소문이 떠돈다. 연쇄살인의 소문이다.

머리를 깎인 젊은 여성이 벌거벗은 모습으로 죽은 채 발견된다. 장 바티스트의 향기 채집법이 바로 여성의 머리털과 피부에서 향을 추출해내는 기법이었던 것이다.

꼬리가 잡힌 장 바티스트는 광장에서 공개처형될 위기에 직면한다. 최고의 향수는 다 완성된 상태이다. 그 동안 추출해 모은 향수를 한데 섞는다. 희생당한 여성은 13명.

처형과 부활

사형집행일 날, 그는 자기 몸에 향수 한 방울을 떨어뜨리고 기다린다. 그를 데리러 온 간수들은 그 향을 맡자 그에게 부복하고 도리어 그를 에스코트한다. 자기 딸이 희생당해 이를 악물고 기소를 하던 검사조차 그의 향내를 맡자 “오, 나의 아들아 나를 용서해다오” 하며 회개의 눈물로 그를 맞이한다.

형 집행의 최종 결정권자인 주교는 그 향을 맡자 그를 강림한 메시아로 칭송한다. 이제 처형장으로 간 장 바티스트는 위풍도 당당하게 나아가 “형틀에 매달라!” 외쳐대는 성난 군중을 향해 손수건에 향수를 뿌려서는 날린다.

날아가는 손수건의 방향을 따라 향이 코에 닿자 군중은 “천사다! 천사께서 내려오셨다!”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군중은 그 향내로 욕망이 불일 듯 일더니, 서로에게 부끄러운 일을 하기 시작한다.

승천

군중의 이런 허망한 반응에 실망한 장 바티스트는 처음 자기가 나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 악취가 나는 고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 사이, 사람들은 향에서 깨어나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 모르는 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간다.

사법 집행부는 사태 수습을 위해 서둘러 애먼 용의자 하나를 붙잡아 교수형에 처하고 일단락지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향수를 꺼내 들고는 한 방울도 남김없이 자기 머리위에 붓는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노숙자들은 그 향기와 더불어 뿜어 나오는 광채를 보고는 “천사다! 천사!”라고 외치며 황홀한 표정으로 달려들어 순식간에 그를 먹어치웠다.

향수

인간이 소유한 감각능력 중 가장 열등하다는 후각기관은 어떻게 보면 이 시대를 사는 우리, 특히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의 지각능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신체 인지기관의 최고 권능인 눈과 귀가 우리 인식을 주도하는 것 같지만 절대 다수가 실은 냄새에 가장 격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이다.

고대로부터 자연과학자들은 후각이 ‘역겨운 냄새 또는 달콤한 냄새’ 오로지 이 둘밖에는 인지 못하는 기관이라 하였는데, 그래서인지 후각은 아무리 악한 것도 좋은 냄새를 뒤집어쓰고 현현했을 때 그것은 언제나 우리를 매료시킨다.

반대로 아무리 정의로운 것도 악취로 인식당하면 그것은 끝끝내 극복하지 못한 채 사무친다. 그런 대중의 반응은 마치 그라스 광장에서 서로에게 부끄러운 짓을 감행했던 담합(Cartel)과 유사하다.

그라스와 바티스트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명과 지명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그라스와 바티스트. 주인공의 이름인 장 바티스트에서 ‘장’은 요한(John)의 불어식 음가이다. 따라서 장 바티스트는 ‘존 밥티스트’ 즉 세례 요한을 은유한다. 이 은유의 운율에 맞추어 향수의 도시 그라스는 그레이스 곧 ‘은혜의 도시’를 일컫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궁극적 의미에서 이곳은 바로 기독교 인구 1,000만에 육박하는 우리가 사는 도시를 일컫는 말이요, 장 바티스트는 젊은 군중의 머리카락 냄새와 피부 냄새로 자신의 노회함을 은닉하는 정의로운 기독교 사제들을 표지한다고 하겠다.(일전에는 일부 노회한 개신교 목사들을 두고 쓴 문장이었는데 좀 바꾸자) 세계 경제 순위 10위권을 자랑하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일컫는 말이요, 장 바티스트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프로퍼갠더로 내 백성을 떡 먹듯이 잡아먹으면서도(시 14:4; 53:4) 추악함을 은닉하는 정의로운 정치인들을 표지한다고 하겠다.

이들의 정치력이란 광장에 모여든 군중을 향해 자신의, 자신만을 위한, 자신만에 의한 향수를 흩뿌려대는 것이 전부다. 그 향내를 맡은 수많은 군중이 서로가 서로에게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다. 자기애로 충만한 정치인들이나 광장의 군중들이 장 바티스트가 겪는 후각 장애를 앓고 있는 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본래 자기 냄새는 못 맡는 법이다. 그것은 자신에게 냄새가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 냄새만은 그 어떤 악취가 나더라도 맡지를 못 하는 사람 특유의 후각 기능에 기인한다.

기독교 경전에도 냄새 이야기가 나온다. 자고로 사도 바울은 자기 냄새가 아닌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풍기라 하였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후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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