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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울에게서 다윗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과정은 머릿속에 잘 새겨져 있는데, 그 사이 하나님의 법궤가 어디서 어디로 옮겨 다니는 지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편이다.

법궤를 블레셋에게 한 차례 빼앗기긴 하는데 그 시점이 언제인지도 혼동하기 일쑤이다.

심지어 사울이 죽는 시점에서 법궤를 빼앗긴 줄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아마도 엘리 가문의 몰락과 사울 가문의 몰락이 흡사한 까닭일 것이다.

이스라엘이 법궤를 빼앗긴 전투는 아벡 전투로서 사울이 왕이 되기 전이다.
엘리 제사장이 아들들이 전투에서 다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목이 부러져 죽는 사무엘상 4장에서 법궤는 빼앗긴다(삼상 4:1, 11-22).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왕을 구하기 이전 시점이다.

엘리 제사장이 몰락함에 따라 사무엘이 실질적 성소 지배자가 되었는데, 법궤를 빼앗긴 경험이 있는 이스라엘로서는 사제의 존재가 전쟁의 승패에 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판단한다. (엘리의 아들이나 당신 아들이나…하는 말이 그 뜻)

사제들의 일가와 그러한 괴리를 갖는 이스라엘에게 왕의 제도를 고지하는 장면이 사무엘상 8장이고, 사울이 왕으로 임관하는 것이 11장에서이다.

하지만 사울이 왕이 된 후에도 법궤는 소외되고 있었다. 성소 자체의 의미가 약화된 것이다. 그것은 사무엘이 왕의 제도를 반대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사울은 왕이 된 이후로 줄곧 외세와의 전투에 시달렸는데(그것이 당신의 용도야),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는 다윗을 견제하는데 정신이 팔려서 하나님의 법궤를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과 좀 달랐다. 사울의 가문이 엘리 가문처럼 몰락하고, 다윗이 명실상부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직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오는 일이었다.

그때 쯤 법궤는 외곽으로 전전하고 있었던 시기이다.

이스라엘이 빼앗긴 법궤는 블레셋 사람들 영지에 있었는데 그들에게 도저히 감당이 안 되어 ㅡ 떼죽음 당하는 등 끊임 없이 불길한 일들이 이어진 것이다 ㅡ 수레에 달려 보낸 것이 벧세메스 사람들의 눈에 띄어(삼상 6:13) 환대를 받는다. 하지만 그 곳에서도 약 5만 여 명이 죽어나가자 다시 기럇여아림으로 보내진다. 법궤는 그곳 아비나답의 집에서 20년을 머문다.

사무엘은 그 법궤를 거점으로 사제로서 역량을 발휘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상 그 성물이 방치 당했던 처지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윗이 그것을 모셔오고자 했던 시점인 사무엘하 6장 본문을 읽으면서이다. 왜냐하면 독자 대부분은 그 성물이 기럇여아림에 있었는지 그제서야 알게 되기 때문이다. 법궤를 움직임을 이미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굳이 법궤를 자신의 성으로 이동시킬 이유가 없는데 다윗은 사울과는 사뭇 달리 그 일을 단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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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ion from the 13th century Morgan Bible of David bringing the Ark into Jerusalem (2 Samuel 6).

다윗은 대체 왜 그 (골치 아픈) 법궤를 자기 성으로 들여오려 했던 것일까?

그 이유는 우리가 두 가지 단서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그 일을 실행하면서 약 3만 명을 동원했다고 신명기 사가는 기록한다(삼하 6:1).
그것은 일종의 선전이었을 수 있다.

봐라! 나는 이렇게 영적인 일에 열심인 왕이다!

이런 가정이 비약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것이 그렇게 진정성 있는 행위였다면, 그 과정에서 비록 사람 하나 죽기는 했지만, 그런 사고에도 불구하고 하던 과업을 속개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화들짝 놀란 듯하다. 그 과정에서 웃사가 죽음으로써 3만 명 앞에서 그만 (개)망신을 당하고 만 것이다.

역시 법궤는 손대면 안 되는 것이었어!

좋게 말하면 신성한 성물이고, 속되게 말하면 골치아픈 터부(Taboo)가 걸린 물건이었던 것이다.

이 터부가 오벧에돔이라는 인물의 집에서 완전히 깨진다는 사실은 중요한 이 본문의 주제이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홍안’을 만난다.
다윗이 어려서 뽑힐 때 얼굴이 붉은 아이였는데, 오벧-에돔 즉, 그는 붉은 사람인 것이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이었을까?

다윗의 강권으로 자기 집에 골칫거리가 들어오는데 반문 한 마디 없이 감수한다.

성경은 오벧-에돔이 복을 받은 구체적 이유를 밝히고 있지는 않다.
법궤와 함께 했다는 사실에만 기인한다.

중요한 사실은 오벧-에돔의 ‘복’을 기점으로 다윗과 법궤 사이의 관계에 완전히 변화가 왔다는 사실이다.

3만 명이 상징하는 바, 그의 보여주기 위한 법궤와의 행진은
자신의 (하체의) 수치를 드러내는 행진으로 완전히 급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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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사실 좀 심함 ㅡ.ㅡ; http://unamsanctamcatholicam.blogspot.kr/2011/01/david-danced-before-lord.html

이 (성적) 수치를 불사한 예배의 메타포는 밧세바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이지만, 이미 그의 시편 51편을 기호하고 있다.

그렇다면 왕이 주저할 정도로 법궤에 걸린 터부를 완전히 깨뜨린 오벧-에돔이 받은 복은 과연 무엇일까?

탈무드에 따르면 오벧-에돔이 받았던 ‘복’이란 바로,
그의 아내와 여덟 며느리가 법궤가 머무는 3개월 사이에 동시에 쌍둥이를 잉태했다고ㅡ.
(cf. Berakhot 63b)

그것은 낭설이 아닐 것이다.
역대기 사가는 다윗 곁에서 예배로 섬기던 오벧-에돔의 자손을 62명으로 계수하고 있기 때문이다(cf. 대상 26:8)

셋째 아이만 (실수로) 잉태해도 가정의 재앙으로 여기는 이 세대에는 요원하기만 한 하나님의 복 개념이리라.

그러니까 오벧-에돔의 복이 시사하는 바는 어떤 조건으로서 복이 아니라, 우리가 도무지 벗어버릴 수 없는 법궤의 존재감일 것이다.
그것을 그 (주변머리 없는) 붉은 얼굴이 묵묵히 감당해내었다는 것이다.

에필로그.

여기서 성서일과가 묶어낸 몇 가지 기호가 있다.

오벧-에돔은 홍안(수줍음)의 인물이었는데, 신약 본문 마가복음 6장에 등장하는 헤롯은 같은 에돔(홍안)이면서도 오벧-에돔의 수줍음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닮아, 함께 사는 여인 헤로디아의 농간에 질질 끌려 다니다가 세례 요한의 목을 치는 일을 하고 만다.

그리고 법궤를 들여오는 과정에서 변화를 받아 (하체를 드러내고) 춤을 추는 다윗을 모욕하는 사울의 딸 미갈은 마치 헤롯의 여인 헤로디아를 닮은 것만 같다.

끝으로 세례 요한의 목을 앗아간 춤, 즉 헤로디아의 딸이 추었던 춤은 어떤 사료에 성적인(sexual) 춤이었다고 기록되었는데 그것은 다윗의 춤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것이었다. 모든 것이 예배의 구심점 차이에서 오는 이야기인 것이다.

* 2015.7.12 | 성령강람질 후 7주 | 성서일과: 삼하 6:12-19. (cf. 삼하 6:1-5, 12b-19; 시편 24; 엡 1:3-14; 막 6:14-29.).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Twtr |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 파워바이블 개발자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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