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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풍경의 여러 요소 중에 육안으로 본 것처럼 똑같이 담기지 않는 요소 중 하나는 구름일 것이다.

구름
충청도 공주의 어떤 산자락. 2014.7.30.

직접 보았을 때랑 똑같은 느낌을 줘보려고 인화를 하면 꼭 왜곡이 되고 만다.

구름의 어원은 흐릴 ‘굴’에 구름 일 ‘엄’에서 왔다는 말도 있고, 냇가를 뜻하는 ‘갈’처럼 물로서 ‘굴’에서 유래되었다는 말도 있고… 분분한 걸 보니 뭔지 모르는 모양이다.

신구약 성서 합하여 약 154회 정도 나오는 구름은 언제나 그 무엇의(대개는 하나님) 현현과 관계 있다. 구름 자체가, 있지만 없는 것이고 없지만 있는 것이기 때문일까.

‘있지만 없는 것이며 없지만 있는’ 이 현상은 물과 불이 합하여 만들어낸 까닭일 것이다.

아마도 4원소 중 양 극단인 존재가 만드는 유일한 ‘형상’이 아닐까. 그래서 이는 상징의 기원이기도 하다.

그 전거를 7년 전에 이렇게 적어 놓았네.

구름은 아주 작은 알갱이로 된 물방울이나 얼음들의 군집이 빛에 반사되어 보이는 것이다. 이 작은 알갱이의 반지름은 학술적으로 약 0.02~0.05mm 정도라고 한다. 이른 바 구름으로서 관측되려면 수십억 개의 작은 알갱이들은 모여 있어야 한다. 구름이 하얀색으로 보이는 것은 빛의 반사율이 좋게 응집돼있기 때문인데 반사율이 좋을 때는 90% 이상도 간다. 아래쪽일수록 회색이며 각종 색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그 물방울이 빛을 산란시켜서 그렇다. 구약 성경에서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구름이 비를 몰고 온다는 이성적 사고도 없진 않았던 것 같은데(왕상 18:44) 구름 속에서는 하나님이 현현하신다고 생각했다. 빽빽한 구름(a dense cloud; a thick cloud)에서 나타나시면 들리기만 했다(출 19:9). 이렇게 하나님이 잠깐씩 나타나신다는 것이 거주(dwell) 개념으로 발전되어 쉐카이나(Shekinah)라는 어휘로 정형화되어 전해진 것은 성경의 작성 시대는 아니고 대략 히브리 정경 확정 이후로 잡는 견해가 있다. 이러한 관념적 토대로 발전된 성소 신앙은 성막과 성전을 거쳐 결국 예수께서 궁극적인 쉐카이나가 되셨다(마 1:23). 하나님이 함께 (거)하신다는 이 공간개념의 변화로 쉐카이나는 “없는 곳이 없다”고 우리는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곳에 물 입자들이 없는 곳이 없다면 우린 이미 구름에 둘러 쌓여있는 게 아니겠나. 빽빽하게 응집됐나 흩어졌나 그 차이다. (2008-04-05)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Twtr |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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