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내가 무심코 그린 이 아이 주검에 대해 이어지는 애도의 반응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이 주검에 애도만 할 수는 없다는 반응이다. 즉 무슬림 난민을 분별없이 애도했다간 무슬림이 범람할 것이라는 따가운 눈총이었다.
이 아이는 시리아 아이이다.
시리아. 시리아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출신지와 동향이다.
‘수로보니게’는 ‘수리아’(시리아) 지역의 지중해 연안의 ‘베니게’(페니키아)를 뜻하기 때문이다. 당시 북아프리카 리비아 지방의 베니게와 구별하기 위해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우리는 이 시대의 참수 순교가 왜 여타의 다른 기독교 지역이 아닌 이 시리아 일대에서 빈발하고 있는지 영적인 의미를 헤아릴 필요가 있다.
이곳에서 IS의 망나니 칼날에 기독교인들의 목이 잘려나갈 때 안타까워하면서도 “그곳에 기독교인이?” 라는 의외라는 반응을 보여왔다.자기네가 선교한 지역에만 기독교인이 서식하는 줄 알아. 최신식 교리가 발달한 우리가 사는 이 안전지대에서 볼 때 그들은 기독교라기보다는 기독교 ‘아류’로 인식되어서 일 것이다.
그러나 시리아 일대의 기독교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 안전지대의 기독교 보다 더 유서 깊은 전통의 기독교이다. 지금으로부터 1900여 년 전 유대-로마 전쟁으로 예루살렘이 그 성전과 함께 완전히 파괴되었을 때 주도권을 틀어쥐고 있던 예루살렘 교회의 헤게모니가 이쪽 지역으로 넘어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천년을 이어간 콘스탄티노플의 영광이 덮였던 이 비잔틴 제국 일대는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그렇게 이슬람에게 넘어가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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