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심리학 『데 아니마』를 누구나 읽기 쉽도록 재구성한 책
『데 아니마』는 자연과학과 생물학적 필치로 이루어졌지만 고대 심리학으로 분류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저이다. 이 고대 심리학 원전을 읽기 쉽도록 재구성했다. 모든 일반인은 물론 뇌과학자, 심리학자, 그리고 기독교인조차, 영혼을 소중히 여긴다면 ‘영혼에 관하여’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어떻게 말해서는 안.되.는.지.를 펼쳐서 보여준다. (데 아니마는 ‘영혼에 관하여’라는 뜻이다.)
영양섭취능력, 감각능력, 운동능력, 욕구능력 등 영혼을 일종의 기능으로 이해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에 관한 기본 명제들을 우리 현대인의 삶의 틀에 맞춰 석의해낸 저자. 영혼이란 알 수 없는 저 먼 하늘나라의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서 먹고 느끼고 움직이면서 체험할 수 있는 실체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우리 삶의 실천서로 손색이 없다. ‘영혼사용설명서’인 셈이다. ㅡ출판사 제공
독자가 기독교인인 경우
1. 기독교인이 된 후 육체와 영혼에 관하여 배웠던 교육에 따르면 한 마디로 “육체는 썩은 것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죽으나 사나 (성)령을 좇으라” 였다. 둘은 원수라고 배운 것이다.
2.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영/혼/육’을 똑똑똑 끊어서 잘 구별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사람도 보았다.
3. 이러한 영혼과 육체에 관한 이해의 결과는 이원적 신앙을 들여왔다.
4. 쾌락을 벗어버릴 수 없으면서도 벗은 척 하거나, 자신이 저지른 쾌락을 ‘내’가 아닌 육체가 했노라ㅡ는 이상한 관념에 젖게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약간 미개한 경우는 자기가 저지른 악을 자기로부터 뽑아내겠다면서 주술에 경도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5. 이와 같은 이원적 사고는 구원관에도 큰 영향을 미처 육체는 훌훌 벗어던지고 영혼만 슝ㅡ 천국가면 그만이라는 이상한 이신칭의의 전거가 되기도 했다.
6. 히브리인에게 있어 육체로 가장 널리 쓰이는 말은 ‘바사르’(בּשׂר)이며 영적인 존재의 의미에서는 ‘네페쉬’(נפשׁ)를 주로 쓰는데 아담을 ‘사람’이라고 했을 때, 그는 ‘바사르’와 ‘네페쉬’를 합친 것이지, 영혼만을 지목하거나 신체만을 지목해 사람이라고 부른 것은 아니다.
7. 다만, ‘바사르’는 헬라식 표현으로 ‘살’(σάρξ)이나 ‘몸’(σώμα)으로 번역되고 있지만, 원천적인 헬라식 ‘사르크스’(σάρξ, 살)를 지칭하지는 못한다. 우리가 ‘사르크스’를 꼬집는다고 했을 때 헬라적 개념에서는 ‘사르크스’는 꼬집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사르’는 꼬집을 수 있는 외견상의 ‘살’이다.
8. 이러한 차이 때문에 신체에 관한한 학자들은 히브리적 개념의 육체와 영혼 개념은 다소 원시적 개념으로 간주하는 대신, 헬라적 개념은 일찍부터 해부학에 토대되었다하여 다소 신개념으로 간주하고는 사실상 영혼과 육체에 관한 이원적 개념에 천착하였다. 우리가 위와 같은 이원적 신앙을 갖게된 전거이기도 하다.
9. 이것은 당대에 플라톤의 영향이 주류를 이뤘고, 특히 어거스틴으로 대변되는 일단의 초/중세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플라톤의 이원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데 기인한다.
10. 특히 바울의 문헌 자체에 내재된 이원적 성향 때문에, 이 같은 이원론이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맞지만, 성경 전체로 이해를 넓힐 수록 그 같은 이해는 전체가 아닌 부분이라는 사실을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11. 본래 히브리적 개념 속에서 신체는 영혼의 구체화이며, 혼과 몸은 긴밀히 통합되어 있어 그걸 둘로 쪼갤 수가 없다고 본다.
12. 엄밀한 의미에서 그건 통합이라기보다 육체를 형태로 이루고 있는 영혼 자체라고 보았다. 그런 점에서 앞서 ‘바사르’는 영혼을 담고 있는 용기요 육은 곧 영혼이었다. 그리하여 히브리적인 개념 속에서 인격의 관념은 ‘몸으로 변한 혼’(Incarnated Soul)이 아니라 ‘산 몸’(animated body)인 것이다. 즉 사람이 몸을 가진 것이 아니라, 사람이 곧 몸이었던 것이다.
13. 그런데 이 때.
14. 헬라적 사조 가운데서 마치 히브리적 개념과도 같은 인간 이해의 전형이 있었다ㅡ고 하는 것은 센세이션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5. 그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위대한 생물학/심리학 문헌, 《데 아니마》라는 사실이다.
16. 그가 펼치는 영혼에 관한 이론을 따라가다 보면, 그것은 마치 “네페쉬 하야”의 그리스식 모상을 보는 듯 한 전율에 빠지곤 한다.
그것은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서의 헬라어 역본인 70인역과 동시대 언어로 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신약성서 이해에도 매우 중차대한 의미를 갖는다.
17. 그러나 《데 아니마》원전을 서구/유럽인이 아닌 우리나라 일반인이 읽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18. 그래서 이 책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사용설명서》가 그것을 읽을 수 있도록 재구성해냈다.
19. 이것은 단순한 재구성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길과 지형, 그리고 그것을 완주하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메뉴얼로 구성해놓고 있다.
20. 그 메뉴얼에 대한 실질적 소개는 저 아래에ㅡ 목차 참조.
독자가 비교적 인문학 조예가 있는 경우
1. 이 책은 어디까지나 고대 심리학 《데 아니마》를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고안 되었지만, 대단히 심층적인 이슈가 될 만한 논제들을 숨겨두었다.
2. 이것들을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읽었다고 해서 이 책에 대한 독서를 그르게 한 것은 아니다. 고급의 독자를 위해 은폐해둔 것이니까.
3. 이것이다.
4. ‘사랑은 하늘에서 난 것인가? 땅에서 난 것인가?’
(이것은 진화론 내지 진화심리학과도 관련 깊다. 신학적 주제만이 아니다.)
5. ‘사랑’이 땅에서 난 것이라고 한다면 진화론적 입장에 도움을 줄 것이고, 하늘에서 내린 것이라고 한다면 신학 특히 기독교적 입장을 대변 하기에 기독교인들에게 좋을 것이다.
6. 사랑이 진화 과정에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로는 당연 찰스 다윈이 효시일 테고, 리처드 도킨스 외에 스티븐 핑커 같은 인지과학 저술가도 있다.
7. 기독교의 성서에는 사랑, 사랑…하지만 ‘사랑’이 땅에서 유전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심층적 주제로 삼는 것은 ‘요한의 문헌들’이다. 사실 기독교인인 나는 ‘요한의 문헌’으로 학위 논문을 연구하던 당시만 해도, 사랑은 하늘에서 내린 것이라는 전제에 천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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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사랑’이 만약 하늘에서 계시된 게 아니라면, 찰스 다윈이나 리처드 도킨스가 주장했던 것과 같은 진화론/진화심리학적 사랑밖에는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사명감을 가지고 ‘사랑’은 오로지 하늘에서 비롯된 ‘계시’(새계명)라는 전제에 천착했던 것이다.
9.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10. 내가 《데 아니마》를 분석할 때에 가장 핵심 구절로 삼은 것이 다음 구절이다.
“왜냐하면 지성은 미래를 위해 저항할 것을 명령하는 반면에 갈망은 현재를 위해 행동할 것을 명령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욕망은 미래를 볼 수 없기 때문에 현재 즐거운 것이 절대적으로 즐겁고 절대적으로 좋은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433b 7-10.]
11. 《데 아니마》에서 전개되는 ‘영혼에 관한’ 그 모든 것이 마치 진화(심리학)적 입장에서 전개되지만 이 ‘지성’ 만큼은 이 모든 진화적인 것과 분리되어 단절된다는 사실에 분석 초기만해도 매우 고무적이었다.
12. 그래서 마치 ‘지성’은 우리의 신체에 속한 모든 것이 썩어진 것일지라도 부활로 들어가는 그것과 연결된다는 점에 모든 기치를 두었던 것이다.
13. 그러나 그런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14. 그것은 이 《데 아니마》를 자꾸만 형이상학 재료로 오인한 데서 온 오해였다. 《데 아니마》의 핵심 테제는 형이상학이 아니라 ‘운동’에 있다. 이 땅에서의 ‘운동’.
15. 우리는 과연 어.떻.게. 움직이는가?
16. 상기의 구절에 등장했던, 두 축들.
미래와 현재.
지성과 욕구.
ㅡ는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필연적인 축이다.
두 축이 아니면 운동이란 발생하지 않는다.
17. 지성은 미래를 위해 저항할 것을 명령한다.
배가 고프지만 훔치지 말 것을 명령하고 저항한다.
복수하고 싶지만 미래를 위해 저항할 것을 명령한다.
18. 반면에 욕망은 현재를 위해 행동할 것을 명령한다.
배가 고프다고 명령한다.
원한에 사무치면 앙갚음 하고 싶다고 명령한다.
19. 그렇다면 ‘사랑’은 지성인가? 욕망인가?
20. 애석하게도 사랑을 실.제.로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사랑’은 지성일 뿐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사랑’은 욕망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21. 에로스가 어떻고, 필레오가 어떻고, 아가페는 어떻게 다르고,
이런 천박한 (이원론적) 사랑 이해를 고대 그리스어는 배격한다.
22. ‘사랑’은 신체 또는 땅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욕망에 더 가깝다.
23. 그것은 기독교 구속사의 텔로스가 땅의 사람에 의해 완성되었다는 점과도 맞닿는다.
24.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며…폐하지 않는다”(고전 13:8)는 뉘앙스와도 맞닿아 있다.
25.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위대한 담론을 통해서 저 유명한 ‘원동자’ 개념을 저 우주의 어떤 신에게 위치시킨 바 있지만,
26. 정작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은 원동자를 하늘이 아닌 땅에다 위치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27. 과연 사랑에서 ‘욕망’을 빼면 뭐가 남는다는 것인가?
―목차―
·Chapter 1 영양섭취능력 | 나는 왜 먹는가?
·Chapter 2 감각능력 | 나는 왜 느끼는가?
·Chapter 3 운동능력 | 나는 왜 움직이는가?
·Chapter 4 욕구능력 | 나는 왜 슬프고, 기쁘고, 즐겁고, 화나는가?
·Chapter 5 사고능력 | 나는 왜 생각하는가?
·Chapter 6 상상능력 | 나는 왜 상상하는가?
·Chapter 7 윤리능력 | 나는 왜 바른가?
—–INSIGHT 이원론 | 나는 둘로 비롯되었는가?
—–INSIGHT 유물론 | 나는 물질에서 비롯되었는가?
—–INSIGHT 유심론 | 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는가?
—–INSIGHT 일체론 | 나는 현상에서 비롯되었는가?
—–INSIGHT 심리론 | 나는 꿈에서 비롯되었는가?
—–INSIGHT 뇌이론 | 나는 뇌신경에서 비롯되었는가?
—–INSIGHT 영혼의 일곱 능력 vs 여섯 가지 심신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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