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가즈 백작의 매장>은 스페인 르네상스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니 만큼 많은 해석이 있지만 이 도상(圖像)에 대해 몇 가지 추가해 둘 나의 해석이 있다.

(1) 14세기 실존 인물의 매장을 16세기 버전으로

대개 이 작품은 14세기의 실존 인물이었던 곤살로 루이스라는 본명을 가진 오르가즈 백작의 매장을 재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이 그려진 시기는 16세기(1588년)였기 때문이다. 가스띠야 왕국의 수석 공증인으로 톨레도 지방의 귀족이었던 오르가즈 백작은 1323년에 사망했는데 평생토록 교회에 많은 재정 지원을 했다고 한다. 그런 그의 장례식을 200여년 후인 16세기 복장과 인물들로 재구성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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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Greco, Iglesia de Santo Tomé, Toledo, Spain, 460 cm × 360 cm Oil on canvas, 1586.

(2) 그림의 주문자

이 그림의 주문자는 오르가즈 가문이 아니었다. 1586년 당시 그 지역 교구의 사제였던 안드레스 누녜스(Andrés Núñez de Madrid)의 주문이었다. 어느 날 이 신부가 오르가즈의 유언장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오르가즈가 죽은 지 200년도 더 흘러버렸는데도… 중세교회의 유언장 속이는 일이 종종 있긴 한데 오르가즈 백작이 숨을 거두면서 산 토메 교회에다가 매년 헌금을 내겠다고 유서를 남겼다는 것이다. 망자의 유언을 16세기 후손들이 거부하고 있는 격이었다.
교황청은 오르가즈의 후손을 설득하여거의 협박 유언대로 재산을 헌납하게 했다고 한다. 바로 이 그림이 그 헌납의 답례품이었다. (답례품이었다는 설도 있고, 재촉하기 위해 그린 것이라는 설도 있고)

(3) 일반적인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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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도 먹고 살아야 하니 주문의 배경이 어찌되었건 화가로서는 알 바 아니고, 엘 그레코가 이 오르가즈의 매장을 재현한 기법에 관심을 가질 차례이다.

우선 이 그림의 작품성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천상과 지상(지하)의 구도이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이전에는 선과 악의 구도가 좌우 구도로 나타났는데, 미켈란젤로가 그것을 상하 지층구조로 표현한 이래 많은 작가가 이런 구도를 채용했다. 엘 그레코가 그린 이 「오르가즈 백작의 매장」에서도 천상 부분이 완전 정신없이 채워진 것도 그런 영향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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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fan Lochner, Last Judgement, c. 1435. Wallraf-Richartz Museum, Cologne. 구닥다리 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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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elangelo, The Last Judgment, Sistine Chapel, Vatican City, 1370 cm × 1200 cm Fresco, 1536–1541.

우선 하단부 중앙에 갑옷을 입은 망자가 바로 오르가스 백작이다. 그 시신을 들고 있는 사제와 부제는 어거스틴과 스테반이다. 어거스틴보다도 스테반 집사가 더 눈길을 끄는데 그것은 그가 최초의 순교자인 동시에 최초의 부제(집사)인 까닭일 것이다. 특히 그가 입은 황금색 법복에는 그가 죽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아울러 좌측에는 성 프란시스(수도승 복장). 이것은 오르가즈 백작에 얽힌 당대의 전설로 알려져 있다. 살아생전 워낙 좋은 일을 많이 해서(교회 헌금을 많이 내서) 죽었을 때 이 두 사람이 내려와 장례를 치렀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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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곳곳에 배치된 인물들이 흥미롭다.

가장 오른쪽에서 레퀴엠을 읊고 있는 사제가 바로 이 그림을 주문했다는 산토 토메(Santo Tome) 교회의 안드레스 누녜스라고 한다. 그런 다음 얼굴들이 잘 보이게 인간 병풍처럼 주욱 둘러선 사람들은 일종의 실존하는 기부자들 정도로 알려져 있다. 기부 혹은 기여도에 따라 그림에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불교의 절간에도 돌탑 혹은 연등에 이름 새겨 넣는 일이 더러 있고, 현대식 교회에도 교회당 벽에 이름 새겨 넣는 일이 있으니 이 그림의 얼굴들을 속물이라 할 거 없다. 내는 만큼 얼굴/이름이 잘 보이는 게 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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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세한 이름들은 위 그림 참조.

천상부로 올라가 보면 모든 그림이 그렇듯 중앙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좌정해 있다. 바로 그 아래에서 왼쪽의 마리아와 우측의 세례 요한이 탄원을 하고 있는데 천상과 지하의 중간계의 구름 같은 뿌연 막에는 어린 아기들이 희미하게 있는 것이 특이하다. 중간계에 머무는 영혼들의 이미지 같은데, 마리아가 중개를 하고 있는 구도 속에서 볼 때 마리아가 그 영혼들을 낳고 있는(위를 향해) 것만 같다. 마리아와 세례 요한 사이의 홀로 천사가 올려 보내는 게 오르가즈의 영혼이다.

중앙 좌우 구석에 있는 인물들도 모두 주요한 배역이다. 좌측 구석에는 하프 타는 다윗, 모세, 노아 순으로 그리고 우측 구석에는 순교자와 나사로 등. 마리아 뒤에서는 열쇠를 쥐고 있는 베드로가 있다. 그리고 그 베드로의 심볼 열쇠 꾸러미와 대칭을 이루는 우측 구석에 직각자가 보이는데 그것을 든 인물은 도마로 알려졌다. 직각자는 목수의 도구이다.

상단 천상에도 당대의 실존 인물이 배치되어 있다. 바로 스페인 왕이었던 필립 2세이다. 게다가 현대의 해석자들은 이 그림을 그린 당사자 엘 그레코의 얼굴까지 찾아냈다. 그것은 그 ‘얼굴의 병풍’들 속에서 정면을 응시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아울러 해석자들은 하단 좌측 스테반 곁에 서서 손가락으로 오르가즈 백작을 가리키는 소년의 정체까지 밝혀냈다. 이 아이의 손수건에 새겨진 년도 수 1578년이 바로 엘 그레코의 아들이 태어난 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아이와 엘 그레코 자신의 초상만이 의미 있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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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이 그림은 살아생전에 좋은 일 많이 하면 천상에서 좋은 대우를 받게 된다는 교훈을 이 아이로 하여금 가리키게 함으로써 학습의 목적을 띤다는 것이 전반적인 해석자들의 결론이다.

(4) 도상 해석

엘 그레코라는 이름에서 ‘그레코’라는 말은 말 그대로 그리스인이라는 뜻이다. 그는 스페인 사람이 아닌 그리스 사람으로 나이가 36세나 되어서야 이 톨레도 지역으로 이주해 왔다. 개신교 정서가 세계를 덮어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구교의 보루였던 스페인으로 찾아와 정착한 이유는 신교가 아니고 구교였던 그의 종교적 사유가 화풍에 영향을 미쳐서일 것이다. 아니면 스페인어도 할 줄 모르면서 여길 왜 와

다시 말해 이 그림은 친 개혁 성향의 화풍이 그들의 프로파간다를 준수했던 것처럼 이 그림도 반(Anti) 개혁 프로파간다 준수의 절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이 그림의 특색은 14세기에 대한 16세기의 재현이라고 일러두었는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이들 인물들의 재현이 가장 큰 특징이다. 천상에 있어야 할 어거스틴과 스테반이 지하 매장지에 등장하고 있는 것과 16세기 당대의 실존 인물들이 14세기 매장에 등장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거스틴과 스테반 처럼 지상에 있어야할 당대의 실존 인물들이 14세기와 천상을 종횡무진 배치된 논리이다. 게다가 그 실존하는 주요 인물들이 천상의 베드로 하이라키와 대등하게 올라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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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반대편 우측에 스페인의 왕이었던 필립 2세가 위치한 것은 그들에 대한 단순한 우상화 작업이라기 보다는 개혁자들을 저지하려는 열망의 신심이라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천상의 인물로 등장하고 있는 필립 2세는 카톨릭의 수호신이었다. 그는 영국 신교의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킨 왕이기도 하며 유럽 영토를 카톨릭으로 통일하고자 했던 왕이기도 하다.

필립 2세가 천상의 옷을 입고 수호신으로 상단에 위치한 것에 반해 이 매장화의 주인공 오르가즈 백작은 갑옷을 입고 있다. 행정직(공증인) 하다가 죽은 사람을 갑옷 입혀 등장시키는 것이 중세 풍속인지는 모르겠으나 부드러운 천국 옷 입혀도 시원찮을 교회에 기부금 많이 낸 사람에게 갑옷은 부적합하다 할 수 있다.

즉 이것은 단순한 ‘교회 헌금 많이 내세요’라는 프로파간다이기보다는 구교의 죽음, 그렇지만 천상에서의 공로와 직결된다는 교훈의 반영인데, 특히 이 화면에서 오르가스의 기적을 가리키며 출연하고 있는 아이의 손가락들은 도상해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단서이다. 대부분의 해석자들은 화가의 아들이라는 사실에만 해석을 매립시켰지 이 아이의 손가락에는 고심하지 않는다.

그리스 출신인 엘 그레코는 단순히 화풍 트랜드나 좇는 화가 이전에 도상화(icon)에 어느 정도 능통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인데 이 그림에서 최종적 단서는 아이의 오른 손과 손가락의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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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왼손 손가락의 방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모양이 유사하지만, 보다 은폐된 기도(企圖)는 바로 횃불을 들고 있는, 횃불과의 방향과의 관계에 있다. 일반적으로 횃불을 들 때에 스틱을 저런 방향으로 쥐는가? 오히려 그 반대로 들게 마련이다. 그런데 왜 거꾸로 된 방향으로 손가락을 지하로 향하고 있을까?

이 그림에서 횃불은 여럿이지만 꽤 제한적으로 묘사되었다. 횃불이 지하 전체를 밝히는 것도 아니고, 상단 중간계에서 움직이는 영혼 조각과 별반 차이가 없이 이 불은 아이의 오른 손가락의 방향과 연동된 icon으로서 종사한다.

손가락의 방향이 달라지면 횃불도 사라지는 구조이다.

이 그림이 그려진 1586년으로부터 약 2년 후인 1588년은 백년 넘게 지속된 종교전쟁에서 카돌릭의 수호자였던 이 스페인 왕 필립 2세가 그동안 전쟁에서 일곱 번이나 승리한 전적에도 불구하고 개신교였던 영국을 침공했다가 참패를 당하는 해이다.

개신교였던 엘리자베스 여왕이 다스리는 영국을 정복해서 유럽 전체를 다시 카돌릭으로 되돌려놓으려는 시도로 침공했던 것이지만 무적함대였던 스페인 함대는 영국 해군에 패배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루터파와 칼빈파 그리고 성공회 등 개신교 세력은 전 유럽을 잠식하게 된다.

천상에 떠 있는 필립 2세와 교황 식스투스 5세를 중심으로 죽은 카톨릭의 – 죽은 오르가즈로 대변되는 – 영광의 재연을 염원하는 신심의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아들 손에 쥔 횃불은 Begin Again 정도?

매장화(burial painting)가 아닌 전쟁화(battle-piece)인 셈이다.

 
에필로그.

산 토메 교회를 오늘날까지 먹여 살리는 게 이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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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Twtr |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 파워바이블 개발자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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