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본의 아니게 귀신 쫓는 행위를 격하시키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마어마한 능력 행하는 분들이 지금 여기 오셔서 능력을 행하며 우릴 들었다 놨다 은혜를 끼친다면 어떻게 될까? 앞서 모든 논지는 일시에 무위로 돌아가고 말 것만 같다.

그렇지만 시간이 흘러 종국에 혹시 그 능력 행하던 분들이 아나니아와 삽비라였다는 사실이 발각된다면? 그때 이 논지는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언급되는 ‘권위 있는 새 교훈’은 그럴 때 효용한 것이다.

왜냐하면 귀신 쫓음이나 병 고침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권세가 될 수 없는 까닭이다. 그것은 적어도 신약성서 안에서 복음일 때만 의미 있다.

병든 자가 고침 받는 것이 복음인가, 복음이 병든 자들을 고치는 것인가?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소중한 다짐이지만 복음은 아닌 이유와도 같다.

마가복음에서 제 아무리 귀신 쫓은 빈도수가 높아도 ‘권위 있는 새 교훈’ 쓰는 그리스도를 고작 출중한 퇴마사의 출현 정도로 전락시키는 복음이 있다면 복음이라기보단 쓰레기에 가깝다.

이 복음서에 축귀의 빈도수가 높은 이유는 악과 응결되어 도무지 분리가 되지를 않던 세계에 그야말로 ‘권위’가 임했다는 것인데, 그 권위의 임재란 실상은 “의지의 임재”라 할 수 있다. 의지가 박약한 세대에는 악과의 응결이 거세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목회자들에게 한 번 물어보시라. 어떤 사람 다루기가 가장 힘드냐고.
대개 ‘말 안 듣는 장로’ 정도이겠거니 하지만,
그 목회자가 진정 영혼을 다뤄본 자라면 다른 게 아니라 ‘의지 없는’ 사람이라고 백퍼센트 답할 것이다.

귀신이 쫓겨나가지 않는 사람은 대개 의지가 박약한 사람이다.
심리상담가들이 애먹는 상대도 의지가 박약한 사람이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도 대개 의지가 박약한 아이들이다.

그리스도의 권위를 한낱 퇴마사 권위로 전락시키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뭔가 돼 보이고 싶은 욕망에 기인한다. 그들의 욕망이 저지르는 가장 큰 과오는 ‘권위 있는 새 교훈’이라는 술어를 자기의 ‘권위’로 가용하다 보니 그만 그것을 퇴마사 권위 정도로 국한 시키고 만다는 데 있다.

‘권위 있는 새 교훈’이라는 이 중차대한 기독교 술어는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의 독보적 권위를 이르는 말인데도 ‘나도 할 수 있다’라는 미명 아래 퇴마사 권위로 전락시키고 만 것이다. ‘나도(혹은 너도) 할 수 있다’, 말은 좋은 말인데 여기서 말하는 엑수시아(권위)를 거기다 갖다 쓰면 안 된다.

가는 곳곳마다 귀신이 분리되어 드러나고 떠났다는 것은 ‘권위 있는 새 교훈’이 들이닥치자 ‘의지가 임했다’라는 본말의 표징이다. 엑수시아(권위)의 본령인 것이다.

즉 그 의지란 ‘권위 있는 새 교훈’을 가지신 그리스도에게 의존하고자 하는 의지를 말한다.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인본적 미덕으로서 의지와는 좀 다른 형태이다.

(참조: 우리는 산 영, 그는 살리는 영)
A living being | a life-giving spirit. ㅡ1 Cor. 15:45.

마가복음에서 가장 도드라지지만 신약성서의 치병, 치유는 대개 이같은 ‘의지의 임재’로 나타났다. 그래서 권능(두나미스)은 힘(power)이지만 권세(엑수시아)는 권위(Authority)인 것이다.

에필로그.

열병에 걸린 베드로의 장모가 낫게 된 정도는 현대 퇴마사들의 이적에 비하면 경미한 것이다싶겠지만,  그 분이 ‘잡아 일으키시니’ 낫더라는 ‘의지의 임재’로서 엑수시아에 응한다는 점에서는 매우 중요한 이적인 것이다. 그래서 위치도 이 복음서 앞쪽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 설교 음성 파일: Google Drive
* 2015년2월8일 주현절 후 제 5주 | 제목: 잡아 일으키시니 | 성서일과, 막 1:29~31. (cf. 사 40:21~31; 시 147:1~11, 20c; 고전 9:16~23.)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Twtr |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 파워바이블 개발자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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