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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한 불행은 하나님의 뜻인가?─2020년에도 각자 개인에게 크고 작은 행(幸) 또는 불행(不幸)이 있었을 것이다. 행복에 관하여는 누구나 이의가 없다. 그러나 불행은 과연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인가? 의문을 갖기 마련이다.

불행 중에는 감당할 만한 불행도 있고 감당하기 어려운 불행도 있다. 불행을 당한 당사자의 기준에 따라 그 중압감도 다르다.

성경에는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고 팔리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는 것이라 했다(마 10:29). 떨어지는 것은 페세이타이(πεσεῖται), 팔리는 것은 폴레이타이(πωλεῖται), 어감에도 신경을 쓴 듯한 구문이다.

그렇지만 누가복음에서는 다르다. 마태복음에서의 참새가 당한 불행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지만, 누가복음에서의 참새가 당한 불행은 하나님이 잊지 않으시는 불행이다(눅 12:6).

마태복음의 참새와 누가복음의 참새 간의 차이는 그것뿐이 아니다.

마태복음에서의 참새는 “두 마리에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참새들이다.
누가복음에서의 참새는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참새들이다.

이들 참새 두 마리(마태)와 다섯 마리(누가)의 차이는 이런 의미로 볼 수 있다.

가령 1천 원에 붕어빵 2개 주는 묶음과 2천 원에 붕어빵 5개 주는 묶음이 있다면 당신은 어떤 묶음을 살 것인가?

연봉이 1억 정도인 사람에게는 둘의 차이가 별로 체감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일당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그 구별이 선명하다.

당연히 2천 원에 5개 짜리 붕어빵이 더 가성비 있는 묶음이지만, 오히려 가난한 사람은 1천원에 2개 짜리를 살 수 밖에 없다. 단가가 비싼 것을 알지만 1천 원만 쓰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누가의 참새는 더 ‘경제적’이고 마태의 참새는 더 ‘운명적’인 참새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의 (하찮은 많은) 참새는 ‘기억이 되는가?’ 라는 문제가 주제이고, 마태의 (많은) 참새는 ‘떨어지느냐?’(죽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눅 12:6

“참새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마 10:29

결론은 참새가 ‘죽는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하면 죽는 게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했던 유명한 독백을 떠올리게 만든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말은 “안 죽겠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지금 죽느냐 나중에 죽느냐” 그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셰익스피어의 예정(내지는 예언)론은 언제나 탁월하다.

특히 햄릿이 뒤에 가서는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Hamlet, 5.2.192-6).

“Not a whit, we defy augury: there’s a special providence in the fall of a sparrow. If it be now, ’tis not to come; if it be not to come, it will be now; if it be not now, yet it will come: the readiness is all…”
(전혀. 우린 징조 따위는 거부하네. 한 마리의 참새가 떨어지는 것도 특별한 섭리가 있지. 지금 일어날 일이라면 나중에 일어나지 않을 일이고, 나중에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면 지금 일어날 것이네. 지금 일어날 일이 아니면 나중에 벌어지겠지.)

Hamlet, 5.2.192-6

그럼에도 적지 않은 현대 기독교인은 햄릿만 못하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는 말을 단지,

“안 죽게 해줄께.”

ㅡ라는 말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저 말은 오로지

“기억 해줄께.”

ㅡ라는 말일 뿐인 것을.

세속 기독교인은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 하지, 기억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두려워 하지 않을 정도로 퇴화되어 있다.

‘쿵!’해서 돌아보니 유리 문에 부딪쳐 떨어져 죽은 새. 2016년

언젠가 길을 가다 ‘쿵!’해서 돌아보니 아파트 유리 현관에 부딪쳐 떨어져 죽은 새가 보였다. 이 아이를 누가 기억한단 말인가. 하나님 외에.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Twtr |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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