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누가복음의 “가정불화” 본문주석

    신약성서에 나오는 ‘가정불화’ 본문은 두 가지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둘은 같은 어록(Q)이지만 다르게 다루고 있다. 이 글은 누가복음 중심의 주석이다. 우선 마태의 본문부터 볼 필요가 있다.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마태복음 10:34-36. 다음은 누가의 본문이다. “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50…

신축년(辛丑年)─기독교인에게 ‘소의 해’란?

동물이 지닌 기질을 통해 만물의 순환 원리를 예측하거나 규정하는 행위는 미신 행위이다. 고대에는 동물의 배를 갈라 내장의 도상에서 신점을 치는 미개한 행위가 성행하였다. 하지만 동물이 지닌 기질에서 기호를 추출해 사물을 읽어내는 일은 미개한 행위도 미신 행위도 아니다. 형이상학적인 관조 행위이다. 성서 안에 등장하는 수많은 동물과 그 역할은 이런 범주에 해당한다. 올해는 소의 해이다. 거듭난 기독교인은 ‘소띠’가 아닌 ‘예수님 띠’라고 말하겠지만, 2021년을 맞이하여 ‘소’라는 동물로 읽는 사물의 기호에 관해 몇 자 남기려고 한다. 일반적인 기호 고대로부터 소는 풍요의 상징이었다. 남성적 생산력의…

내가 당한 불행은 하나님의 뜻인가?

2020년에도 각자 개인에게 크고 작은 행(幸) 또는 불행(不幸)이 있었을 것이다. 행복에 관하여는 누구나 이의가 없다. 그러나 불행은 과연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인가? 의문을 갖기 마련이다. 불행 중에는 감당할 만한 불행도 있고 감당하기 어려운 불행도 있다. 불행을 당한 당사자의 기준에 따라 그 중압감도 다르다. 성경에는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고 팔리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는 것이라 했다(마 10:29). 떨어지는 것은 페세이타이(πεσεῖται), 팔리는 것은 폴레이타이(πωλεῖται), 어감에도 신경을 쓴 듯한 구문이다. 그렇지만 누가복음에서는 다르다. 마태복음에서의 참새가 당한 불행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지만, 누가복음에서의 참새가 당한 불행은…

도올 김용옥의 사이비 복음서

목차 I. 제4복음서에 대한 도발(挑發) II. 영지주의에 대한 도착(倒着) III. 마르시온에 대한 애착(愛着) IV. 도올의 사이비 복음, 큐(Q)복음서 이 글은 도올 김용옥 교수가 그동안 사회에 유포해온 사이비 기독교의 폐해를 통감하고, 그 중에서도 그의 복음서 이해에 나타난 이단성을 알리고자 구성한 글이다. 텍스트에 관한 이단성이 그의 모든 사이비성의 진원지이기 때문이다. 도올 김용옥 교수는 지금부터 약 12년 전 EBS 방송에서 기독교에 대한 도발을 일으킨 바 있다. 구약을 믿는 것은 성황당을 믿는 것과 같다면서 “구약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당시 이 사태는 수개월 후…

타긴 테트(tagin ט)

이 그림은 히브리어 알파벳 중 ט(테트)를 장식으로 꾸민 그림이다. 히브리어 문자를 저런 타긴(תגין, 왕관)으로 장식하는 도안은 아모라임 시대(약 AD 200-500경)에 고안된 이후 다소 조악한 해석에 응용되곤 하였다. 히브리어로 숫자 9가 바로 이 알파벳 테트(ט)인데, 픽토그램화 하여 꼬부라진 뱀으로 기호화 한 것이다. 유대교의 카발라에서는 이 ט를 이중의 의미로 여긴다. 악(惡)의 개념일 때는 꼬부라진 뱀의 형상이고, 선(善)의 개념일 때는 절하는 왕관 쓴 사람의 형상이다. 일종의 숫자를 신비화 한 것이다. 이러한 수비학은 타고난 재능이 있을 때에만 적절한 해석을 가할 수 있다. 바코드를 숫자화…

김진호著, 「권력과 교회」 비판

이 책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의 기독교를 속칭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사미자’(사랑의교회/미래를경영하는연구자모임)로 규정하고 국회 원내의 높은 개신교 비율과 사회 정의 간의 괴리감으로 서론을 시작한다. 이와 같은 세속적 통계를 개신교와 권력의 유착 관계로 특정하고 그 뿌리와 핵심 기반을 20세기 초 서북인들의 출신 성분과 그들의 이주 동선에서 찾아 유래로 제시한다. 그러고는 궁극적으로 한국교회에서 ‘선한 목자’로 통칭되는 개신교의 교조적 핵심 인물(들)의 레이아웃을 투영해내는데, 저자 김진호가 사명감 넘치게 주도하는 이 기획 곧, 한국교회의 성배를 거꾸로 엎어 놓기 위한 이 작업을 청취하다보면 독자에게는 아마 이런 내면의 목소리가 들릴…

한국 개신교는 부활의 종교인가?

개혁의 이름으로 자행된 총신대 사태, 사랑의 교회를 향한 집요한 공격, 동성애 합법화를 위해 평등으로 위장하고 들어오는 성(性) 관념들, 이념에 오염된 그릇된 토지 사상. 교회를 향한 이러한 도전들은 믿음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다”라는 저 확신만큼이나 의심으로 얼룩진 한국 개신교의 자화상을 반영한다. 과연 한국 개신교는 부활의 종교인가? (죽지도 않고 부활하겠단 소리로 들려 묻는 말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부활이란 본래가 의심 속에서 그 자리를 굳건히 세운 투쟁의 산물이지, 어떤 일회적 마술쇼에서 비롯된 것이 결코 아니었다는 성서의 증언들은 우리에게 그나마…

누가의 ‘주기도문’은 마태와 어떻게 다른가

이 글은 누가의 주기도문이 마태의 주기도문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정리한 글이다. 1) 주기도문은 부적인가? 얼마 전 미국 플로리다주 펜사콜라 시의회 회의장에서 어떤 자가 사탄을 소환하는 기도를 하자 주변에 있던 크리스천들이 주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기도문이란 이 같이 악령을 내쫓는 부적 내지 주문의 기능을 하는 기도문인가? 마태복음은 예전(liturgy)으로 쓰기에 더 적합한 정형을 이루고 있지만,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은 그 기도문의 유래를 밝히는데 주력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임을 우선 일러둔다. 이 글에서 그것을 요약할 것이다. 李榮振 | Rev., Ph. D. |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일흔일곱 번(77) 용서해야 하나, 일흔 번씩 일곱 번(490) 용서해야 하나

    이 글은 희년의 본질을 밝히는 글이다. 부활절의 성립은 유월절에 근간을 두고 있지만, 궁극적 실천은 희년(禧年)에 뿌리를 두고 있다. [희년의 범주와 근거] – 매매 된 토지 환원 (레 25:29-34) – 노예의 해방 (레 25:39-41, 47-54) – 부채 면제/ 채권, 채무의 소멸 (신 15:1-3; 레 25:35-37) [희년의 유래 및 취지] – 유배 시대 및 유배 끝에 작성된 사제문헌(P) – 빚으로 종 된 이스라엘의 해방(포로기 체험) – 친족 구조 보호 – 떠나지 않도록 성서에서 표출되는 희년에 대한 기대는 실로 지대한 것이지만…

예수님은 왜 유교병(아르토스)을 사용했나?

    성만찬의 제정은 부활절과 직결되어 있다. 예수님이 고난과 죽음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식사가 곧 성만찬으로서, 기독교 예전의 총아가 되었기 때문이다. 부활절(Easter)이라는 말 자체는 성경 용어는 아니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오히려 이교적 양식에 기원을 두고 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이 날은 본디 3세기까지만 해도 파스카(πάσχα/ 유월절)로 불리며 기념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c.f. 고전 5:7; 행 12:3-4; 눅 22:7-20) 그런데 이 유월절 식사인 ‘최후의 만찬’에서 무교병이 아닌 유교병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신학적인 난제로 꼽히는 대목이다. 왜냐하면 무교절 식사와 사실상 병합된 이 유교절 식사에는…

헤르메네이아 미문 (美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