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괴물 ‘리워야단’과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글은 홉스의 책 <리바이어던>에 관한 테마로 교회와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모티프를 제공하기 위해 쓰였지만 성경에 나타난 어떤 상징을 오늘날의 의미로 가져오는 방법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그것은 300년도 더 된 이 책이 담은 이해를 통해 성경에 등장하는 그 악의 상징을 오늘날 어떻게 가져와야 하는지 그 방법을 고찰하였다.

리워야단

(1) 홉스의 책 <리바이어던>의 개요

리바이어던이라는 말은 우선 성경에 등장하는 괴물을 일컫는다. (리워야탄이라는 히브리어 음가의 영어식 발음이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Leviathan)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사 27:1)

토마스 홉스는 그의 역작 <리바이어던>에서 국가를 일종의 인공적 인간(人工的 人間)으로 간주하고 그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① 국가의 주권은 인공 혼으로 전신에 생명과 운동을 공급한다.
② 장관이나 행정관리는 인공 관절이고,
③ 보수와 체벌은 신경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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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개별 가정과 재산은 체력이고,
⑤ 복지는 그 인공적 인간의 과업이다.
그리고 ⑥ 원로들은 인공인간의 기억과도 같으며,
⑦ 형평과 법은 인공적 이성과 의지요,
⑧ 평화는 건강,
⑨ 소요는 질병,
⑩ 내란은 죽음이다.
끝으로 ⑪ 이 모든 것을 결합하고 창출하는 신약(信約)은 이른 바 창세에 신이 말씀하신 ‘인간을 창조하자!’는 명령에 비유된다.

이것이 이 책의 골자이다.

(2) 성서에 나타난 리바이어던과 그 개념

이것은 마치 일찍이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의 꿈에서 통찰했던 괴생명체를 서술했던 방식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다니엘의 진술을 모티프로 재형해낸 요한계시록 속 괴생물과도 같은 것이다. 한 마디로 그것은 집단이 갖는 일종의 영성이라 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의 괴생물은 로마제국이었을 것이다.

성경의 괴물

그러니까 이들이 모두 하나의 괴생명체로 묘사되는 것은 그것이 결국 하나님을 떠난 ‘자율적인’ 집단의 영성이라는 데 그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리워야단이자 베헤못의 성징(性徵)이다.

성경에는 이런 괴물체의 흔적이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악어나 하마나 뱀으로 혼역된 리워야단이라는 존재가 지닌 문맥들은 모두 이들 최강 파워들이 하나님 권세아래 종속되어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c.f. 창 1:21; 출 7:9, 10, 12; 신 32:33; 시 91:13; 욥 3:8; 시 74:13‐17; 89:9‐10; 104:26; 사 27:1; 51:9‐10; 렘 51:34)

욥기에서 등장하는 비헤못(하마), 그리고 시편의 라합, 독사, 뱀 등은 이러한 권세를 지칭한다. 욥기에서는 하나님이 그것도 지으셨다는 개념이, 시편에는 그것을 깨뜨리고 흩으셨다는 개념이 나타나 있다.

“이제 소같이 풀을 먹는 하마를 볼지어다 내가 너를 지은 것같이 그것도 지었느니라”(욥 40:15)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시 91:13)

“주께서 바다의 흉용함을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에 평정케 하시나이다 주께서 라합을 살륙당한 자같이 파쇄하시고 주의 원수를 주의 능력의 팔로 흩으셨나이다”(시 89:9-10)

(3) 고대 이방 신화의 리바이어던

마르둑(Marduk)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이자 바빌론 도시의 수호신이었다. BC 18세기 함무라비 시대에도 태양신이자 주신(主神)으로 숭배된 마르둑 신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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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티아맛(Tiamat)과 아프수(Apsu)라는 우주적 신이 있었다. 티아맛은 바닷물(쓴물)을 상징하는 여성신이었고, 아프수는 강물(단물)을 상징하는 남성신이었다. 원초적 혼돈을 상징하는 바다 신 티아맛이 흑암에 있을 때 육지의 신 마르둑이 그 티아맛를 잡으려고 바람을 타고 순회했다. 티아맛이 자기 자손을 죽이려 하자 안샤르(하늘 신)는 마르둑을 신들의 대표로 세웠다. 마르둑이 다른 신들로 하여금 자신의 으뜸 됨을 드러냈으나 티아맛이 마르둑을 삼키려고 턱을 벌렸다. 그러나 마르둑은 티아맛의 입 속으로 휘몰아치는 바람을 불어넣어 턱을 닫지 못하게 하고는 그 배에 화살을 쏘아 그녀를 죽였다(마르둑은 삼지창을 들고 싸운다). 마르둑은 그 추종자들을 사로 잡고는 운명의 문자판을 가슴에 단다. 그런 다음 티아맛 시체를 둘로 찢어 하늘과 땅을 만들고 마르둑 자신은 그 중간계 중에서 바빌론 신전으로 은퇴하였다

여기서 티아맛은 악한 용이다. 그 용을 죽이고 그 시체를 이용하여 혼돈으로부터 육지(세계)를 창조하였다고 전하는 이 메타포가 시편에 일부 들어와 있다.

“하나님이 바다를 변하여 육지 되게 하셨으므로 무리가 도보로 강을 통과하고 우리가 거기서 주로 인하여 기뻐하였도다”(시 66:6)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시 74:13)
“저가 바다를 갈라 물을 무더기 같이 서게 하시고 저희로 지나게 하셨으며”(시 78:13)

(4) 고대 이방 신화와 성서의 관계

근대의 신학자들은 성서가 이 신화의 모조품이라는 연구로 시간을 허비 하였다. 그러나 창세기는 오히려 당대에 팽배했던 이러한 신화에 대해 안티(Anti)의 입장을 목적으로 두고 기록된 책이다. 도리어 그러한 신화의 노예들로부터 개명시키려는 노력으로부터 출발한다.

창세기의 죄의 시작이 ‘뱀’을 지목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며, 특히 3장에서 뱀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이런 반 신화적 입장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창세기 1장의 우주 창조에서 일체의 태양이나 달의 명칭이 회피되어 있다. 그것은 그 시대에 그것을 열렬히 숭배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특히 창세기 1장 21절에 언급된, KJV에서는 큰 고래로 번역해놓고 있는 이 큰 물고기는 역시 위에서 언급된 괴생명체의 일종일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위 시편/욥기의 괴생명체와의 연관성 아래 있다.

그것은 어떤 악마를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모든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의미로서 결국 그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할 것과 선민들로 하여금은 그것을 극복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창세기 1장 27-28절의 정복하라(지키라)와 다스리라는 의미도 이와 연장선상에 있다. 특별히 28절의 ‘다스리라'(רדה)는 짓밟으라는 뉘앙스인데, 위 신화적 표현들과 연하여 이 괴생명체에 대한 택자들의 권세를 이르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자연파괴 신학(번영신학)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자연보호 신학(생태 신학)도 아닌 것이다.

(5) 신약의 리바이어던

구약의 이러한 통찰과 기대감이 신약에 와서 성령의 이름으로 실현된다.

하나님의 성령이 이 파괴된 집단 영성의 치유자로서 임한 것이다. 그 치유의 본령이 오순절 성령강림 첫 번째 현상 속에서 잘 나타나 있다. 바로 방언이다. 저자 누가가 이 방언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도상 속에 위치시켰는지를 이해하는 그 본령의 핵심 열쇠이다. (요즘에 일고 있는 방언의 진위 논란은 다음을 참조: 노우호 목사의 악령 방언(γλώσση)설은 다 옳은가?)

방언은 모든 이상적인 공동체로 들어가는 관문과도 같은 입구이다. 적어도 초대교회에서는 그러하다. 그런데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체험의 현장을 창세기 바벨탑 도상과 맞추어 비교시켜 놓은 것은 전적으로 누가(Luke)의 놀라운 통찰 덕택이다.
바벨탑이 바로 리바이어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탑을 쌓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였는가? 들리지 않았다. 망치를 달라고 하는데 흙을 건네고, 물을 달라고 하는데 불을 건네는.., 이 언어 파괴적인 리바이어던 현상과 오순절 성령강림의 방언의 은사 현상을 누가는 동치로 묶어 버렸다.

성령이 임하시니 바벨탑/리바이어던의 때처럼, 갑자기 들리지 않게 된 것이다. 전혀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하는 바로 그 현상이 다시 도래했다. 그러나 이 리바이어던 현상 속에서는 오로지 경건한 자만이 들을 수 있다.

말(logos)을 통해 재구성되는 이 공정은 각 세대가 인공적으로 창출해냈던 리바이어던과는 전혀 다른 성령의 리바이어던으로 이해될 수 있다. 홉스의 표현인 바, 인공 혼, 인공 관절, 인공적 이성과 의지가 아닌 바로 성령의 사랑의 법으로 다시 창조되는 과업. 이것이 바로 성령이 교회를 통해 이 세상에 하시려는 일, 새 리바이어던의 프락세이스(praxis, Acts)인 것이다.

에필로그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교회권력에서 해방된 국가를 가리키며 그러한 국가의 성립을 논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절대 마이너리티였던 교회가 어느새 절대 권력에 자리하게 된 시대에 국가를 도리어 그 권력으로부터 해방하려는 것이 ‘순수’로 보여졌던 시대의 이야기다.

오늘날 현대 교회는 권력은 아니지만 권력과 밀착해 있다. 그것은 오순절 다락방에서 해체되었던 바벨탑, 그리고 다시 성령으로 – 인공적으로(홉스의 표현인 바) – 조직된 유기적 생명체로서 교회 본질에 역행하는 일일 것이다.

  • 미문(美門)에서 처음 맞았던 성령강림절(2012.5.27)의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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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Twtr |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 파워바이블 개발자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성경의 괴물 ‘리워야단’과 홉스의 ‘리바이어던’”에 대한 2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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