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코로나 박해를 대하는 한국교회 엘리트주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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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코로나 박해를 대하는 한국교회 엘리트주의 방식

어게인 1907

십여 년 전 ‘어게인 1907’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한국교회에 강타한 적이 있다. 2007년을 앞두고 몇 년간을 들썩였는지 모른다.

‘1907’이란 숫자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 있어 마치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 성령 강림처럼 부흥의 분기점이 되었다 하여 “한국의 오순절 강림일”로 불리며 가장 의미 있는 사건의 발생 연도로서 기리는 상징 수이다.

2007년을 앞두고 몇 년 전부터 그 해가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100주년이라는 상징성의 극대화 때문인지 마치 시한부 종말의 사인처럼 기독교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설렘을 자아냈다. 2007년에 무슨 이벤트가 있는지, 그것을 주관하는 주체는 누구인지, 전혀 알지도 못하고 정해진 바도 없으면서 몇몇 인기 찬양 인도자 중심으로 그렇게 2007년을 향하여 돌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7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평화와 평등만 외치는 낭만주의 기독교인은 아마도 1907 ‘평양’에서 일어났다는 그 한 가지 사실만 부각하여 2007년 실제로 평양에서의 ‘평양 대부흥 1907’을 복고하리라 야심에 차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단상의 ‘의자’ 가지고 싸우느라 부활절 연합 예배 하나도 제대로 못 치르게 된 대형교회 또는 교파주의자로서는 ‘1907’은 큰 구미를 끌기 어려웠을 것이다(내 자리 어디야).

2007년이 되자 한국교회를 강타한 것은 ‘아프칸 피랍 사태’였다.

탈레반이 한국 개신교인 단기 자원봉사자 23명을 피랍하여 감금 억류하다 심성민씨와 배형규 목사, 두 명을 살해하고 나머지 단원을 42일만에 풀어준 사건이다. 당시 개신교는 단기 선교라는 ‘관광 상품’에 물질과 시간이나 허비하는 상식도 없는 독선의 집단이라는 집중포화를 맞았다. 그 상식의 돌팔매에는 개신교 엘리트들이 던지는 돌이 다량 섞여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실제 1907

기독교인에게 ‘1907’은 막연한 로망 내지는 상징성으로만 남아 있다.

역사적 날줄이 실제로 어떻게 임하였는지는 잘 기억 못한다. ‘1907 대부흥’이 과연 성공한 부흥이었느냐는 그 후 3년 뒤에 일어난 사건을 통해서만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있다. 3년 뒤에 일어난 충격적 사건은 ‘한일 병합 조약’이기 때문이다. 대부흥회 후 3년 뒤에 나라를 완전히 잃고 만 것이다.

책으로 만나는 역사는 자기 필요한 것만 골라 극적으로 읽을 수 있지만, 실제로 살아 내는 역사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것은 마치 BC 7세기 유다왕국 요시야 왕의 대대적인 종교개혁에도 나라가 멸망하고 말았던 비극처럼, 그리고 ‘어게인 1907’을 고대한 한국교회에는 탈레반의 테러와 더불어서 같이 쏘아 대는 엘리트 기독교도들의 조준 사격처럼, 1907년의 통렬한 대 회개 운동은 ‘한일 병합 조약’이라는 결과로 매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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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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