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지난 해 우리 사회를 강타한 이래 정부는 한국교회를 마치 전염병의 진원지인 것처럼 방역 시국에 적극 이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한국교회는 마치 100여 년 전 신사참배를 할 때처럼 ‘질서’를 표방한다는 점에서 우상숭배의 길을 답습하고 있다.

코로나

어게인 1907

십여 년 전 ‘어게인 1907’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한국교회에 강타한 적이 있다. 2007년을 앞두고 몇 년간을 들썩였는지 모른다.

‘1907’이란 숫자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 있어 마치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 성령 강림처럼 부흥의 분기점이 되었다 하여 “한국의 오순절 강림일”로 불리며 가장 의미 있는 사건의 발생 연도로서 기리는 상징 수이다.

2007년을 앞두고 몇 년 전부터 그 해가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100주년이라는 상징성의 극대화 때문인지 마치 시한부 종말의 사인처럼 기독교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설렘을 자아냈다. 2007년에 무슨 이벤트가 있는지, 그것을 주관하는 주체는 누구인지, 전혀 알지도 못하고 정해진 바도 없으면서 몇몇 인기 찬양 인도자 중심으로 그렇게 2007년을 향하여 돌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7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평화와 평등만 외치는 낭만주의 기독교인은 아마도 1907 ‘평양’에서 일어났다는 그 한 가지 사실만 부각하여 2007년 실제로 평양에서의 ‘평양 대부흥 1907’을 복고하리라 야심에 차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단상의 ‘의자’ 가지고 싸우느라 부활절 연합 예배 하나도 제대로 못 치르게 된 대형교회 또는 교파주의자로서는 ‘1907’은 큰 구미를 끌기 어려웠을 것이다(내 자리 어디야).

2007년이 되자 한국교회를 강타한 것은 ‘아프칸 피랍 사태’였다.

탈레반이 한국 개신교인 단기 자원봉사자 23명을 피랍하여 감금 억류하다 심성민씨와 배형규 목사, 두 명을 살해하고 나머지 단원을 42일만에 풀어준 사건이다. 당시 개신교는 단기 선교라는 ‘관광 상품’에 물질과 시간이나 허비하는 상식도 없는 독선의 집단이라는 집중포화를 맞았다. 그 상식의 돌팔매에는 개신교 엘리트들이 던지는 돌이 다량 섞여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실제 1907

기독교인에게 ‘1907’은 막연한 로망 내지는 상징성으로만 남아 있다.

역사적 날줄이 실제로 어떻게 임하였는지는 잘 기억 못한다. ‘1907 대부흥’이 과연 성공한 부흥이었느냐는 그 후 3년 뒤에 일어난 사건을 통해서만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있다. 3년 뒤에 일어난 충격적 사건은 ‘한일 병합 조약’이기 때문이다. 대부흥회 후 3년 뒤에 나라를 완전히 잃고 만 것이다.

책으로 만나는 역사는 자기 필요한 것만 골라 극적으로 읽을 수 있지만, 실제로 살아 내는 역사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것은 마치 BC 7세기 유다왕국 요시야 왕의 대대적인 종교개혁에도 나라가 멸망하고 말았던 비극처럼, 그리고 ‘어게인 1907’을 고대한 한국교회에는 탈레반의 테러와 더불어서 같이 쏘아 대는 엘리트 기독교도들의 조준 사격처럼, 1907년의 통렬한 대 회개 운동은 ‘한일 병합 조약’이라는 결과로 매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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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역사적 ‘1907’의 핵심 요체는 미국 선교사들의 ‘전천년왕국설’(pre-millenarianism)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차세계 대전 발발 이전이었던 당시, 아직까지는 일본과 긴밀한 관계에 있던 미국이 파송한 선교사들에게 있어 피선교지의 감정인 반일(反日)을 선교 모티프로 상정한다는 것은 많은 무리가 있었다. 미국인 선교사들 자신의 선교 자산 자체가 위협 받기 때문이다.

이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전천년왕국설’ 외에는 이 헐벗은 민족이 겪는 ‘모순’에 대하여 해명하고 전수할 교시가 없었던 것이다.

‘전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재림 직후에 설립될 왕국이다. 이 고난과 모순은 그리스도께서 아직 오지 않으신 까닭이다. 상대적 개념인 후천년왕국은 왕국이 먼저 전개된 후에 그리스도께서 나중에 오신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박해의 시대가 한참 진행되다가 비로소 심판주로서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해명이 우리에게는 더 잘 적용이 되는 종말론이었다. 그렇다고 사회주의/공산주의 기독교도가 신봉하는 무천년 곧 지상천국의 가치를 따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1907’은 어느 날 누가 갑자기 기획해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다. 4년 전인 1903년 한국에 단기 방문한 스웨덴 목사 프란손과 화이트 여사에 의해 진행된 한 주간짜리 기도회에서 비롯된 모임이 유래이다. 이 한 주간의 사경회 참석자 중에 ‘1907 집회’의 주도자가 될 남감리교 선교사 하디(R. A. Hardie)가 있었다. 이렇게 시작한 기도 운동을 1907년을 기점으로 한국인 목회자들이 이어 받으면서 한국인의 무브먼트가 되었다.

1907이 낳은 것

‘1907 대 부흥’ 무브먼트는 이용도 같은 신비주의자를 낳았다.
(1928년에 목사가 된 그는 이단 정죄를 받는다)

오늘날 적지 않은 사람이 이용도의 정체성에 낭만적 평가를 입히는데 참으로 문제가 많은 인물이었다. 그리스도와 나의 합일(合一)에 지나친 일체감을 둔 나머지 교회의 전통이나 성직자나 교리나 성례전도 필요없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성애(性愛)적으로 표현하여 그리스도를 신랑이라 부르며 자기는 신부이니 ‘포옹하고, 입맞추고’ 이런 저렴한 표현을 서슴치 않는 집회를 이어갔다.

공교롭게도 그는 속옷(빤스?) 같은 표현도 비유로 사용했다.

그러나 ‘1907’은 이런 빤스 목사만 낳은 게 아니었다. 3·1운동의 기독교 기수들도 잉태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공산당 가입을 거부하는 선량한 동포의 피부 껍질을 벗기고 고환을 떼어가는 공산주의/사회주의 기독교도도 잉태하고 있었다.

이런 혼돈의 시대 현상을 전문용어로 아포칼립시스(ἀποκάλυψις) 즉, 묵시의 시대라 부른다. 악과 재앙이 권세를 잡으니 혼돈이 가득한 세상인 것이다.

1907 당시 6-7살이었을 이용도는 훗날 목사가 되어 많은 문제를 야기시켰지만, 그는 1907에 배여 있던 그 묵시적 색채를 제대로 이어갔는데 일제 치하에서 눈뜬 장님이요 말하는 벙어리요 들리는 귀머거리로서 소멸해가는 기독교도를 흩어지지 않게 역할을 한 공적이 있다.

8·15 코로나 세균이 되어 버린 한국교회

지구상의 어떤 나라든지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로 체제 전환할 때 가장 걸림돌이 된 집단은 ‘전문 지식 집단’과 ‘종교 집단’이기 마련이다. 그 전례들을 상기할 때 연금 복지형 어젠더로 체제 전환을 시도 중인 우리 사회에서도 가장 골치 아픈 집단은 전문 지식 집단과 종교 집단일 것이다.

우리 사회의 골치덩어리 전문 지식 집단으로는 의사들이 그 표적이 되고 있으며, 종교 집단으로는 한국교회 더 정확히는 개신교 교회가 표적이 되고 있는 양상이다.

지난 8월 15일 같은 지역에서 수 천명의 ‘민주노총’이 집회를 강행하고 있었음에도 유독 개신교 교회만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민주 노총은 아예 열외로 두고 연일 계속 되는 ‘교회’와 ‘코로나’를 동일시 취급하는 듯한 이 긴급 재난 문자 세례는 확실히 한국교회와 코로나를 동일시 하려는 당국의 의지로 밖에는 안 보이는 터이다.

불과 5-6시간 이내에 쏟아져 든 문자 세례
같은 날 집회하고 있는 ‘민주노총’

광화문 시위를 전광훈 목사가 주도했다 하여 한마디로 이 사회의 모든 기독교인을 전광훈의 신자로 간주할 테세이다. 그래서인지 일부 기독교인은 아예 이들과 선 긋기에 놀라울 정도로 발빠르다.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1907년 평양 장대현 대부흥 집회에 참여한 그 모든 사람이 ‘이용도’ 또는 그의 신도로서 거듭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마찬가지로 8·15 광화문에 들렀던 그 모든 기독교인이 ‘전광훈’의 신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체제가 해체당하는 위기감을 분출하는 시공간이 바로 1907이었고, 2020년에는 8월 15일 그 지점이었을 뿐이다.

그 바람에 본의 아니게 많은 사람이 그 시공간에 있었다는 사유만으로 걸어 다니는 ‘8·15 기독교 코로나’ 신세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권세 잡은 자들이야 원래 기획이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권세자의 매질보다 더 뼈 아픈 매질은 언제나 우리 기독교 사회 엘리트들에 의해 자행된다.

‘어게인 1907’의 당해 연도였던 2007년, 피랍된 선교/봉사단을 향해 ‘관광’으로 폄훼하는 세력과 함께 돌을 든 의식 있는 기독교도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의식과 상식이 잘 작동하고 있는 한국교회 엘리트들, 그들의 돌팔매질은 언제나 이들에게 더욱 아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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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Twtr |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 파워바이블 개발자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8·15 코로나 박해를 대하는 한국교회 엘리트주의 방식”에 대한 1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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