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국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가고 있다. 백신 접종률에 따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전문가 견해도 상반된다. 어떤 전문가는 코로나 시국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도 하고, 어떤 전문가는 변종 바이러스 추이에 따라 만성 전염병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이 글은 설령 우리가 과거의 일상으로 회귀한다 하더라도 코로나 시국 방역 정책에 반응했던 교회와 목회자의 대응을 영원한 기록으로 남기려는 목적에서 작성했다. 과거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재림의 날짜를 특정했을 때, 백의를 입고서 그 재림의 장소에 나갔던 자들이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그 우상숭배의 사실 자체는 사라지는 게 아닌 이치이다. (이 글의 작성 시제는 4월임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코로나 시대의 설교와 성례전 문제
지난해 초 중공(中共) 우한에서 처음 유입되기 시작한 코로나19 감염증 시국이 1년을 넘기도록 장기화하면서 사회 곳곳에서 시민들의 대응이 본질적인 양상으로 변하고 있다. 헬스클럽 사업주들은 자신의 자본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였고, 유흥가에서 술을 파는 업주들도 거리로 뛰어나와 생존이라는 본질적인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교도소의 재소자들도 살려달라는 생명의 절규를 피켓에 담아 교도소 창문 틈으로 내 걸기도 했다. 한국 교회만 자신들이 처한 근원적인 문제를 모르는 것 같다.
코로나 시대의 근본에 관한 한국 교회의 인식 부재는 두 가지 양상으로 집약할 수 있다. 첫째, 선민의식이다. 대구에 거점을 둔 신천지 집단에서 처음으로 대량 확진자가 나왔을 때 평소 신천지의 포교 방식을 극도로 혐오하고 있던 한국 교회는 일제히 신천지와 감염증 세균을 동일시하는 반응을 보인 바 있다. 그 뒤로 개신교 내에 확진자가 속출하자 확진자를 낸 그 공동체 목회자가 ‘어느 신학교 출신이냐?’, ‘어느 교파 소속이냐?’를 가려 묻고는 안심하는 방식으로 코로나19의 침공에 의연하게 대처했다. 자신은 그들과 다른 기독교인이라는 데서 오는 의연함이었을 것이다.
둘째, 이들의 의연한 대처보다는 적극적인 대처가 있다. 코로나 감염증 시국의 여파인 ‘온라인 예배’(비대면 예배)가 “제2의 종교개혁이다.”라며 고무된 방송 설교 목회자들의 등장이다. 이들의 커밍아웃에 따르면 제1의 종교개혁은 “교황을 정점으로 한 철저한 계급 시스템”에서의 출애굽이었고, 제2의 종교개혁인 ‘비대면 예배’는 “특정 공간을 절대화함으로써 영이신 하나님께 영으로 예배드리라고 하신 주님 말씀에 걸림돌이 되어버린 잘못된 길”로부터의 출애굽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오늘의 터키를 여행해보면서…한 가지 분명한 메시지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인간들과 끊임없이 그것을 허무시는 하나님”이라고까지 규정했다(2020.10.19.기독일보 참조).
이 글은 이 중 후자에 담긴 그릇된 사상을 바로잡고자 작성했다. 전자의 의연한 대처는 이단 혐오이지만, 후자의 커밍아웃은 교회 예배당 혐오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특히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인간들과 끊임없이 그것을 허무시는 하나님”이라는 커밍아웃 맥락에서 볼 때 정작 허물어야 할 대상은 건물로 된 예배당 아니라 바로 유명 방송설교가 자신의 우상화된 설교일 것이다. 종교개혁을 입에 담아가며 예배당을 폄훼하는 이 용감한 대처는 언어 설교가 물리적 구조물을 대체한다는 성례전 신학의 오남용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교회 건물은 허물어야 할 대상이고, 방송에서 축성한 자기 말은 그 건물을 깨뜨릴 주님의 살과 피라는 전제이다. 허물어져야 할 이들의 설교가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간략하게 짚어보고자 한다.
중세 시대의 설교와 성례전 문제
중세기(中世紀)를 통상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시점에서 르네상스 시대까지로 한정할 때 고대의 설교를 호밀리아(Homilia)라 칭하고 중세의 설교를 세르모(Sermo)라고 구별한다. 그리고 중세 설교인 세르모에서 구별된 의미로서 개혁자들의 설교를 콘치오(Contio)라고 부른다. 고대 호밀리아는 설득의 기술이 요구되었지만, 중세 세르모에는 더이상 설득이 필요 없었다. 신비로움을 극대화할 수사(rhetoric)만 필요했다. 예수 믿으면 죽어야 했던 시대에서 예수를 믿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는 시대로 이행했기 때문이다.
9세기에 접어들면서 중세 교회는 사실상 이중의 예배를 드렸다. 하나는 세례자를 위한 예배이다. 다른 하나는 아직 세례받지 못한 사람을 위한 예배였다. 세례자의 예배는 성찬이 중심이었고, 세례받지 못한 자들의 예배는 교육적인 설교가 그것을 대신했다. 이해와 설득의 기술이 동반된 고대의 호밀리아는 사실상 이등의 예전(禮典)으로 전락하게 된 셈이다.
중세의 예전은 갈수록 신비주의로 흘러갔다. 성인(聖人)들의 전설을 담은 스토리텔링, 고행, 연옥의 교리 따위들이 주된 내용을 이루었다. 초대 교회에서는 설교와 성만찬이 성례의 역할을 함으로써 신자를 교화했지만, 중세로 넘어와서는 고해성사나 성인숭배가 설교인 호밀리아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성찬은 성직권 강화의 핵심 예전으로서 특수한 신비 의식으로 변모했다. 입에 넣는 떡이 축성하는 순간 주님의 살로 변한다는 화체설(transsubstantiation)은 이런 기반에서 강화된 신비주의 교리이다.
언어를 사용하는 설교 예전이 이등의 예전으로 밀려나고, 떡을 떼는 성찬이 사실상 일등의 의례로 자리했을 때, 언어의 자리를 대신한 것은 그림이다. 예배에서 제단화는 필수 도구였다. 중앙 패널의 중심 주제가 되는 그림과 함께 뚜껑인 양 날개에는 주제와 연관된 그림이 장식된 접이식 제단화(Altarpiece)가 화가의 재능에 따라 예배자에게 큰 감동을 주도록 고안되었다. 성찬 절정의 순간에 접이식 패널 뚜껑이 열리면서 부활의 그리스도 도상이 펼쳐지는 식의 예배로 진행되었다.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추진된 개혁의 진수는 단순히 계급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사회주의식 개혁이 아니라 예배·예전의 성례에 관한 개혁이었음을 유념해야 한다. 이런 비성서적이고도 비본질적인 예전을 다 걷어내고 성서에 보전된 원리만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ra)에 담긴 포괄적인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루터는 자신의 설교에 이 가치를 적용함으로써 과도한 우화적 시도, 비유적 시도 그리고 무엇보다 신비적인 해석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개혁을 발전시켜 나갔다. ‘양심을 치는 설교’를 증대함으로써 고대 호밀리아 기능을 복원하고 신비주의적인 성찬, 특히 화체설 따위가 가져오는 마술적 의미를 제거하고 개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찬 자체를 아예 제거한 것은 아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성례에 대한 개혁자이지 성례 파괴자가 아니란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종교개혁 이전에는 성례가 일곱 가지였다. 세례성사, 견진성사(입교), 성체성사(성찬), 고해성사, 혼인성사, 신품성사, 종부성사, 이렇게 일곱 성사에 대한 개혁 과정에서 다른 것은 모두 제거했어도 ‘세례와 성찬’만은 원리를 더 분명히 함으로써 남겨 두었다. 왜 두 가지는 남겼을까? 그것은 말 그대로 ‘성례’였기 때문이다.
성례를 뜻하는 라틴어 사크라멘툼(Sacramentum)의 사전적 어원은 ‘바치다’라는 뜻을 가진 사케르(sacer)에서 온 말이지만, 성서 원전에서는 ‘비밀’을 뜻하는 뮈스테리온(μυστήριον)을 옮긴 번역어이다. 구약을 포괄하는 계약 신학의 형식이 신약의 예전 형식으로 정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뮈스테리온을 중세에 신비주의 해석으로 일관한 것이 문제였지 계약의 신비 자체가 무효화한 것은 아님을 유의해야 한다.
성례 중에 ‘성찬’은 그 의미를 두고서 종교개혁자 간에 이견이 갈린 주제이기도 하다. 성찬에서 실질적 임재의 의미를 제거할 수 없었던 루터는 공재(consubstantiation, 共在)라는 개념으로 온건한 개혁을 했고, 츠빙글리는 단지 기념(memorialism, 記念)이라고 절하해버림으로써 중세교회적인 어떠한 미신적 요소도 허용할 수 없었던 급진적 개혁 노선을 반영했다. 오늘날 개혁주의 후예들에게 널리 채용되고 있는 개념은 칼빈의 영적 임재(spiritual presence)이다. 칼빈은 성례를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 양심에 인치시는 외형적인 표”라고 정의했다. 성찬은 그 선행한 계약(약속)의 표지이며 말씀은 그에 관한 이해를 수반한 선포이기에, 알아들을 수 없는 중세 미사를 신성 모독이라고 여기면서, 말씀과 성찬을 사실상 등가의 형식으로 선언했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도 “성례는 은혜 언약의 거룩한 표와 인이다.”라는 지침으로 이를 따른다. 즉 오늘날 성례의 진정한 원리는 종교개혁의 유산이자 총화이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한 우리 시대 제2의 종교개혁가들만이 이 성례의 절박함에서 자유롭다. 이들 제2의 종교개혁가들이 주장하는 비대면 예배의 정당성은 감염증 시대 같은 응급한 상황에 국한한 것도 아니요, 예배가 불가한 박해국의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국한한 것도 아니라는 점에 위험성이 있다. 코로나 사태가 예배당을 향해 “하나님이 대포를 쏜 것”이라는 호도(糊塗)는 대단히 성례 파괴적이기 때문이다(2020.10.18 크리천투데이 기사 참고). 이 같은 성례 파괴적인 사상에는 자신의 설교만큼은 파괴되지 않는 주님의 살과 피라는 21세기 화체설이 배후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발상은 선행된 약속과 선포된 말씀의 도장(印)과도 같은 것이 성찬이라고 교시한 칼빈의 가르침을 무색케 한다.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친 예배는 신자가 살과 피로 직접 만나서 듣고 이해하고 최종 성찬으로 인침으로써 화체설 같은 허위 예전을 격파하는 가치였음에도, 이들은 비대면의 영상이 참되다며 가현설(Docetism)을 퍼뜨린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참되게 영으로 드리는 것이 영상 온라인 비대면 예배라는 말로 주님의 살과 피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허위 성례전으로 채워진 비대면 예배 옹호론은 엄밀한 의미에서 상업적 설교 시장의 독과점에 따른 자신감의 발로일 것이다.
아드 폰테스, 말씀의 성례전 본질로 돌아가라
사실 중대형 교회의 예배 예전은 이미 코로나19 시대 이전부터 다양한 방송 시스템을 통해 설교 독과점 체제를 가져왔다. 소형 교회들이 코로나19에 신음하고 있을 때, 대형교회나 수많은 팔로어를 선점한 유명 방송설교가들은 한국 교회 바벨론 포로기라 불릴 만한 예배 중단 사태의 재앙을 자신의 방송 설교에 대한 가치와 자신감으로 환원해갔다. 이것이 유흥업소나 재소자들이 부르짖은 생명의 절규만도 못한 영성으로 한국 교회를 퇴행시켰을 것이다.
초대형 교회는 위성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이미 내부 네트워크 권역을 넘어서 지방 도시에까지 위성 교회를 두고 약정된 개런티에 불하하는 방식으로 방송을 송출해왔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 방송 콘텐츠 회사들이 지방에 기지를 개국할 때는 으레 중견급 목회자의 설교를 전시해주는 설교 매매 형식으로 방송 제작의 원가를 보장받으려 했다. 이런 설교 시장의 구조는 코로나 시대 이전에 이미 도래한 주님의 살과 피를 범하는 성례 파괴적 폐단들이다.
코로나 시국이 1년을 넘기면서 비단 소형 교회의 고충만이 아니라 비대면 예배에 도무지 집중할 수 없는 수많은 기독교인의 고통은 외면한 채, 제2의 종교개혁으로 시국을 호도하는 한국 교회의 기현상은 영향력 있는 설교자 대부분이 오프라인에서의 자기 시청자들 외에도 잉여 팔로워를 확보해놓았다는 자신감에 기인한다. 고충을 대변할 책임을 유기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이 코로나 시국에 정말로 “하나님이 대포를 쏘셨다”라면 바로 이들의 설교를 향한 것이며, 예루살렘처럼 붕괴해야 할 성전이 있다면 그것은 교회 건물이 아니라 자신의 말로 축성해 주님의 살과 피의 체현을 훔치고 범하는 이들의 설교일 것이다.
아드 폰테스. 진정한 말씀의 성례전 본질로 돌아갈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핵심은 이 본문에 있다.
이것은 내 몸이니라
(τοῦτό ἐστιν τὸ σῶμά μου)
성찬에 대한 츠빙글리의 이해와 해석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네델란드 인문주의자 코넬리우스 호니우스(Cornelius Honius)가 루터에게 편지를 보내, “이것은 내 몸이다(마 26:26; 막 14:22).”란 문장을 라틴어 수사법에 의거해 “나는 포도나무이다”(요 15:5)처럼 “이것은 내 몸을 상징한다.”라고 옮길 수 있다고 전했을 때 루터는 성경이 분명히 “이것은 나의 몸이다.”라고 기록한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며 즉각 거부했다.
루터의 이런 직역을 두고 현대 개혁주의 후예들은 가톨릭의 예전에 대해 온건한 루터로 평가하기 위한 일화로 전용하지만, 루터는 이미 라틴어 est로 번역한 헬라어 동사 에이미(εἰμί)는 요한복음에서 “나는 생명의 떡이다(6:35).”의 명료함으로 드러난 ‘임재(I AM, Ἐγώ εἰμι)’이며, 마태와 마가복음에서 역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다(마 22:32; 막 12:26).”라는 명료한 말씀의 현존재로서 부활의 용법 에이미(AM, εἰμί)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이다/있다”(Ἐγώ εἰμι, I AM, )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했던 코넬리우스 호니우스의 견해는 훗날 재세례파(Anabaptist) 이론이 되었다. 세례를 부정하는 신학의 기반이 된 것이다.
제2의 종교개혁가를 자처하는 한국의 유명 방송설교가들은 성찬과 세례 그리고 임재가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있다는 것인지, 그들의 말은 허위의 성례전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