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재즈를 곡해한 영화 위플래쉬(Whiplash)

    친애하는 친구분들이 감동을 많이 받은 영화인데, 위플래쉬에 대해 좀 미안한 비평을 해야겠다. 거기서 나오는 주인공 선생님이 가장 혐오스러워 하는 말, “Good Job!”(참 잘했어요)라고만 말하는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lol~ 위플래쉬(whiplash)는 채찍질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형편없는 작품이지만 가능성 있는 부분을 캐내어 발견해주고 그곳을 집중적으로 칭찬해주는 방법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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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c 신학과 교회를 침몰시킨 예수의 자의식

    어벤져스(2015)를 관람했다. 이야기 구조와 편집이 엉망이라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전투 장면 뒤로 보이는 ‘즉석 떡볶이’라는 글자나 필리핀 따갈로그 처럼 들리는 우리말은 반갑기보다는 내가 사대주의자임을 각인시킬 뿐인 영화. 그런데 딱 하나, 매우 흥미로운 개념 하나가 내포되어 있는 걸 보고서 깜짝 놀랐다. 그걸 설명하려면 이야기를 조금 ‘스포’해야 한다. 스포주의!   (1) 단독자 Vs. 독단자 어벤져스를 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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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2014)과 모노게네스(요 1:14, 18)

 이 글은 국제시장(2014)에서 묘사된 아버지 상을 통해 기독교 성서에 나오는 모노게네스 곧, ‘독’(獨; only) 또는 ‘독생’(獨生; only begotten)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작성한 글이다. 우리말 성서에는 대개 이것이 ‘독생자’라고 번역되어 나온다. 그러나 독생자(獨生子) 라는 말은 엄밀한 의미에서 그릇된 번역이다. ‘독자’ 또는 ‘외아들’을 연상 시키는 이 말은 모노게네스(μονογενής)를 번역하는 과정에 영미권에서 only begotten으로 번역할 수밖에 없는 한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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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2014)를 기독교인이 감상하는 법

인터스텔라. 이 영화에 은폐된 고도의 이해를 꺼내오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포함된 스포일러가 있다. 1~5까지는 플롯을 전치하고, 6 이하부터 해석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관람 전에 읽어야 하느냐 후에 읽어야 하느냐’는 선택의 문제가 뒤따르지만 스포일러가 불편한 독자는 다음 견해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사람들이 미리 좀 읽어두었더라면, 영화 <장미의 이름>(1986)은 흥행에 좀 더 성공했을 것이다. 패트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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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오브갓(2014)을 나더러 만들라면

    지난주 <선오브갓>(2014)에 관한 기고를 하나 냈다. 어떤 웹진의 요청에서였는데 영화 실제 내용보다는 ‘플롯’이란 개념에 대해서만 좀 언급했다. 기고문: http://www.crosslow.com/news/articleView.html?idxno=1837   종려주일. 이 ‘호산나’ 플롯의 핵심은 <배신>이다. 배신 해본 적 있는가? 아니면 배신을 당한 경험이 있는가? 대부분 배신을 당했던 것만 말하지 자기가 배신한 건 잘 말하지 않는다. 특히, 누구보다도 배신의 방점을 찍었던 인물이 자기를 배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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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2014)가 발견한 은혜

지난주에 작성한 노아(2014) 리뷰의 후속편이다. 이 글을 추가로 남기려는 것은 이 영화를 대하는 기독교인의 반응을 통해 그들이 지닌 <은혜>의 편벽된 이해가 여실히 드러났다는 확신에서다. 즉 그 나머지 반쪽 이해가 어떤 것인지 남기기 위함이다. 영화 노아(2014)는 이스라엘의 단군 할아버지 격인 ‘아브라함’이 안고 있던 역사적 쟁점을 알지 못하면 그 본질을 소화하기 어려운 플롯으로 구성되었다. 아담과 노아는 어느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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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2014)를 기독교인이 감상하는 법

    노아(2014)는 비 기독교인이 관람하기에는 상당한 성서 지식을 전제한 영화이고, 기독교인이라 하더라도 본문에 대한 고민과 체험이 없다면 이해가 어려울 정도로 성서에 집중한 수작이다. 특히, 평소에 노아를 사랑의 교회 장로님이나 순복음 교회 장로님 정도로 연상했던 기독교인에게는 꽤나 실망을 안겨줬을 법하다. 이 노아는 러셀 크로우가 그동안 배역 맡아온 글레디에이터의 ‘막시무스’, 장 발장의 ‘자베르’와 거의 같은 타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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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헤겔의 합리적 신(神)의 죽음

      헤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을 다시 한번 찬찬히 보았다. 강의 내용상 을 주제로 엮어 쓴 논평 하나와, 라는 주제에 끌어다 쓴 논평 하나, 이렇게 상반된 두 입장을 같이 비교하면서 이 이야기를 변증법 예제로 활용했다. 경향신문이 전자 관점에서 시대 배경과 함께 평론 하나를 내놓은 적 있고, 조선일보가 “장발장은 100% 희생자인가?”라는 제하에 마치 전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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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가 말한 영화 속의 착각

유심론[唯心論], 유물론[唯物論] 강의를 위한 두 번째 영화로 를 학생들에게 소개했다. 기독교인들은 아마 이 강도 높은 반신론적 코드에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지만 그 코드를 되감아 도리어 신론에 종사시킬 수도 있다. #1_ 트루먼은 우리처럼 반복적 일상을 살아간다. 앞집 부부를 만날 때 하는 인사도 같고, 가판대 신문/잡지를 살 때, 건널목을 지날 때, 항상 같은 사람, 같은 장면, 아무런 의심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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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양’은 어떻게 기독교를 오해했나

서울에서 남편을 잃은 신애(전도연)는 사랑하는 남편과의 추억이 깃든 밀양으로 아들과 함께 이사 온다. 이사 오면서 만난 카센터 사장 종찬(송강호)이 신애에게 연민을 품고 접근해 오지만 신애는 무감각하기만 하다. 어느 날 신애는 아들마저 잃고 만다. 모든 것을 잃고 절망에 빠진 나머지 교회에 의지하지만 교회의 이중성, 특히 무엇보다 아들의 생명을 앗아간 범인이 개종 후에 보이는 의연한 태도에 기독교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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