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진격의 거인―대한민국 퇴행에 관한 소고

진격의 거인―대한민국 퇴행에 관한 소고. 이 글은 일본 만화 <진격의 거인>에 담긴 기호와 해석을 다룬 글이다. 더 정확히는 <진격의 거인>을 통해서 보는 현대인의 섭식 행태, 그리고 그것이 미치는 사회 현상에 관한 담론이다. 다음 네 단계로 정리하였다. 첫째, 만화인가 서사인가, ‘진격의 거인’. 둘째, 오락인가 본성인가 ‘먹방’. 셋째 식인인가 섭식인가, ‘카니발리즘’. 넷째, 작물화인가 가축화인가, ‘민주주의’. 만화인가 서사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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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을 탄핵하면 안 되는 신학적인 이유

고대 유대인에게는 우리나라의 헌법재판소와 같은 최고 법정 제도가 있었다. ‘산헤드린’이라 불리는 결정 기구이다. 산헤드린의 기원을 어느 때로 산정하느냐 의견이 분분하다. 바벨론 포로 귀한 시대에 에스라-느헤미야가 설치한 훈시 기구를 기원으로 삼는 경우도 있고(스 10:8; 느 5:7), 아예 모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수많은 민·형사 소송을 홀로 처리할 수 없었던 모세가 70인 장로를 뽑아 분담했던 시절을 기원으로 잡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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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란(亂)이 될뻔한 종교개혁

개혁과 혁명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제도로의 복귀 또는 제도로서의 복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루터의 진정한 개혁의 자리(setting in Reformation)는 가톨릭과의 배타적 관계보다는 농민과의 관계에서 빛난다. 소작농은 루터의 개혁에 있어 든든한 하부 토대(플로레타리아트)였지만 루터의 과(過)를 말할 땐, 정작 이들의 혁명을 외면하였다고들 말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후들은 루터의 이름을 빌려 그들 가운데 약 6000명을 처형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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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부터의 도피’ 중인 한국 사회

얼마전 한 방송사에서 ‘김정은 신뢰도’라는 통계를 조사하여 결과가 77.5%라며 그것을 여론이라고 보도하였다. 그런 조사를 실행한 기관이나, 그런 조사에 응답을 한 사람들이나, 양자 간에는 모종의 공통된 모순성의 기제가 있다. 우선 이 방송사가 구현하는 상기의 다양한 비주얼 자료의 진지함을 보노라면, 객관적 보고의 형식을 빌리고는 있으나 거의 선전에 가까운 기여를 해내고 있다. 그 다음은 통계에 응한 대중의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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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공산주의자 청산문제

아래의 사진은 지난 해 제주 4·3평화공원에 방문했을 때 건물 앞 마당 한 켠에 설치해 둔 ‘베를린 무너진 장벽’의 잔해물을 찍은 것이다. 독일에서 공수해온 것으로 보인다. 낭만주의자들은 평화의 노래를 부르지만 베를린 장벽 붕괴를 가리켜 ‘민주주의의 종말’이라 했던 장-마리 게노(Jean-Marie Guéhenno)의 단상이 떠올랐다. 프랑스인으로서 코피아난 유엔 사무총장 시절 평화유지 담당 차관이었던 그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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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타임지 커버 스토리(walnut)─정전협정 4개월전

이승만 대통령이 TIME지 커버 스토리에 실린 것은 총 2회이다. 한 번은 1950년 10월 16일 그러니까 6·25가 터진 뒤 3개월 후. 그리고 또 한 번은 1953년 3월 9일, 즉 정전협정 4달 앞두고서이다. 전편은 앞서 번역을 해두었는고(전편 읽기), 속편은 시간이 없어 미루고 있다 이제 올린다. 같은 기자가 쓴 것이다. 1) 지금 우리 상황을 예언처럼 진술하고 있다.2) 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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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송환 요구’에 기독교는 왜 궐기하지 않는가

탈출은 기독교 패러다임의 근간이다. BC 15세기 이집트 천민이었던 히브리 민족의 탈출기는 유대교와 기독교 신앙의 원형이 되었다. 그로부터 1천여 년이 흐른 BC 586년 남 유다의 멸망 이후, 바벨론에서 무려 70년간이나 뿌리를 내린 유다 민족이 3차에 걸친 본토로의 이주를 탈출로 이해한 것은 그들이 사실상 이집트 탈출기의 편찬자인 동시에 독자였던 까닭이다. 이들이 탈출하면서 가졌던 은밀한 식탁 연회는 유월절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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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서 걱정한 민족주의

전설에 따르면 나다나엘은 인도와 아르메니아 일대에서 선교하다 살가죽이 벗겨지는 고통을 당하며 순교를 하였다 한다. 이러한 전승에 기인해 그에 관한 작품은 대부분 참혹한 도상을 띤다. 그 가운데 가장 사실적이면서도 치열한 영성을 간직한 작품은 밀라노 두오모 성당(Duomo di Milano)에 세운 입상일 것이다. 마르코 다그라테(Marco d’Agrate) 작품으로 사도상은 대개 긴 겉옷을 두르고 그 권위와 기품을 드러내지만 나다나엘이 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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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인, 히브리인, 유대인은 같은가 다른가?

‘이스라엘인’, ‘히브리인’, ‘유대인’은 같은 말인가? 다른 말인가? 사실상 이음동의어로 사용하고 있고, 또 역사적 문맥에서도 이 셋은 동일한 의미로 서술되지만 각각의 고유한 의미는 다른 것이다. 이 ‘다르다’는 사실은 ‘같다’는 사실 이상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왜 중요한가 살펴보자. 1. 이스라엘인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그가 다투다’, ‘싸웠다’, ‘힘썼다’는 동사 사라(שָׂרָה)에서 비롯된 ‘이스라’(יִשְׂרָ)와 하나님의 칭호 ‘엘’(אֵל)이 합쳐서 된 말이다. 즉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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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 보다 중요한 것

지난 12월 6일 도널드 트럼프 미 합중국 대통령은 현재 이스라엘 텔 아비브에 위치한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김으로써 세계 각 나라로 하여금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임을 인식하도록 하겠다’는 20년 전의 미 의회 법안을 전격 단행하여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의 수도”임을 공식 천명하였다. (관련 선언문 참조) 이러한 조처는 유대인 당사자뿐 아니라 전세계 기독교인, 특히나 이스라엘의 회복을 언제나 종말론적 관점에서 수용하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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