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moon

Text에 집중할 수 있는 예배. | the righteousness of God | Since April 8, 2012.

족보가 없는 사람들

프롤로그 | 신분제 사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분제 없는 사회란 없었지만 특히나 현 우리사회에 남아있는 신분적 잔재의 모체는 조선시대라 하겠다. 다음과 같은 과정이 있었다. 그 시대 초기에는 천인(노비)을 제외한 양반, 중인, 서민들이 역(役)과 세(稅)를 부담하는 사회였다. 그러던 것이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양반만 지위가 상승하고 나머지는 노비와 함께 지위가 격하되고 말았다. 그러나 사회가 그렇게 편 방향으로 가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전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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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빠르거나 느린 것들

자라는 것을 캡춰해 모아 영상으로 보려고 했는데 벌써 자라버렸다. 너무 빨라서 못보았는가 너무 느려서 못보았는가.  씨앗을 흙에 넣고 잎이 되기까지는 약 2주에서 3주가 걸린다. 자라나는 것을 충분히 목격할 수 있을법한 속도다. 그렇지만 그것을 24시간 지켜보고 있다하더라도 그것이 자라나는 과정은 목격할 수 없다. 자라난 잎을 볼 뿐이지 그 과정은 볼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시각(視覺)은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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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이 잃었다가 다시 받은 것들

지난주에는 욥의 의(義)를 기점으로 나타나는 두 가지 측면을 살펴보았습니다. (참조: http://www.mimoonchurch.com/159 ) 자신의 의를 과신하는 욥 하나와 – 패배주의적 신앙과 그것을 연결지었습니다 –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 – 그것은 주로 창조로 표현되었습니다 – 앞에서 회개함으로 오직 하나님의 의로 덧입은 욥이었습니다.  오늘 이 본문(막 10:17-31)에 등장하는 ‘재물이 많은 사람’은 부자로서 재물이 많다는 점에서 욥과 닮았지만 계명을 다 지켰노라고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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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 시험에 대한 3가지 반응

TV 다큐라는 것을 보고 눈물 흘리며 본 것은 이 분 이야기가 처럼이었을 것입니다. 다들 아시려나 모르겠습니다만, ‘풀빵 엄마’라는 다큐멘터리입니다. 풀빵 엄마 선천적 소아마비인 최정미씨는 두 아이의 싱글맘이지만 늘 밝게 삽니다. 풍족하진 않지만 풀빵 장사로 애들을 잘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언제나 표정이 밝습니다. 그러나 소화 불량으로 찾은 병원에서 듣는 위암 2기 진단…, 4개월 뒤엔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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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가 말한 영화 속의 착각

유심론[唯心論], 유물론[唯物論] 강의를 위한 두 번째 영화로 를 학생들에게 소개했다. 기독교인들은 아마 이 강도 높은 반신론적 코드에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지만 그 코드를 되감아 도리어 신론에 종사시킬 수도 있다. #1_ 트루먼은 우리처럼 반복적 일상을 살아간다. 앞집 부부를 만날 때 하는 인사도 같고, 가판대 신문/잡지를 살 때, 건널목을 지날 때, 항상 같은 사람, 같은 장면, 아무런 의심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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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사위

프롤로그 | 기요틴 인류 역사상 극형에 가장 많이 사용된 수단은 참수였다. 그것은 사형집행자의 숙련된 기술과 힘을 요할 정도로 용이한 방법이 아니었다. 단번에 처리되지 않을 땐 사형수로 하여금 추가 고통과 극도의 공포감을 안겨주었으며, 한순간에 끝내달라고 사전에 뇌물을 쥐어 줄 정도였다. 프랑스 혁명기에 등장한 기요틴이라 불리는 단두대는 그런 사형수들의 인권을 위해 고통없이, 신속하게 처형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죄수 인권을 주창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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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양’은 어떻게 기독교를 오해했나

서울에서 남편을 잃은 신애(전도연)는 사랑하는 남편과의 추억이 깃든 밀양으로 아들과 함께 이사 온다. 이사 오면서 만난 카센터 사장 종찬(송강호)이 신애에게 연민을 품고 접근해 오지만 신애는 무감각하기만 하다. 어느 날 신애는 아들마저 잃고 만다. 모든 것을 잃고 절망에 빠진 나머지 교회에 의지하지만 교회의 이중성, 특히 무엇보다 아들의 생명을 앗아간 범인이 개종 후에 보이는 의연한 태도에 기독교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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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어디론가 내던지는 권능

“나는 무엇인가?” 라는 물음은 사람만 가능하다. 나를 일종의 타자로 볼 수 있는 능력으로 우리는 이 능력을 통해 나 자신을 어디론가 던질 수 있는 것이다. 과거 혹은 미래로. 여기서 말하는 과거와 미래의 구체적 실체는 죽음이다. 두려움도 여기서 발생한다. 죽음은 통증이 아닌데도 두려움인 것은 그것이 종료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강박을 타고 산출 되는 것을 우리는 ‘시간’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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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 예찬

프롤로그 | 세습 가치 (전략) 시기가 작용하면 마귀만 좋아하고 교회는 성장하지 못합니다. 아버지 목사가 은퇴하고 아들이 담임자가 되면 “세습”이라고 공격하고 비난합니다. (중략) 좌파들은 북한의 3대 세습은 한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교회의 정당한 후임자는 세습이라고 비난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목사도 성직자이지만, 육성을 갖고 있는지라 자기보다 훌륭하고 설교 잘하는 후임자가 들어오면, 잘해도 불편하고 못해도 불편합니다. 시기심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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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과 소명에 대한 오남용, 그리고 부추김

사명 즉, missio는 마땅하게 주어진 어떤 임무를 말하는 것이며, 소명은 vocatio라고 하여 그 어떤 임무를 위해 타자가 부르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사실 어떤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이 양자는 구분 될 필요가 없었다. missio에 대한 인식과 의식이면 어떤 직무든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vocatio가 강조되는 때는 그 부르는 대상으로서 타자가 명징하지 못할 때에,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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