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룟 유다에게 준 떡 한 조각 의미
가룟 유다가 떡 한 조각을 받고서 행동을 개시했다는 이야기 전개는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내용이다. 다른 복음서에는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막 14:20; 마 26:23)가 예수 자신을 파는 자이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예수 자신이 그를 지명하듯이 나온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조각을 받은 […]
가룟 유다가 떡 한 조각을 받고서 행동을 개시했다는 이야기 전개는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내용이다. 다른 복음서에는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막 14:20; 마 26:23)가 예수 자신을 파는 자이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예수 자신이 그를 지명하듯이 나온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조각을 받은 […]
가룟 유다가 등장하는 대부분의 성화는 최후의 만찬 장면이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 하면 대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 주제로 그린 그림 중 효시가 레오나르도의 작품이겠지 싶지만 이 주제는 플로렌스 지역 예술가들에게 단골 주제였다. 왜냐하면 그 지역에 수도원이 30여개나 있었기 때문이다. 주로 그 수도원들의 식당에 걸린 그림의 주제였다. 우선 이 그림의 인물상을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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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기초 강의 2021년ㅡ동사 입문 편입니다. 이 동영상 강의는 회원 가입만으로 사용가능한 콘텐츠입니다. 이 사이트에 있는 기존의 헬라어 기초 강의 시리즈는 일반 가입 회원에게는 제한되어 있으나 이 시리즈는 공개 버전입니다. 이 동영상 강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기도문 독음 지난 회에 익혔던 독음 법을 토대로 주기도문을 헬라어로 읽습니다. 큰 소리로 따라 하십시오. 헬라어 문장의 기본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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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마대 요셉은 네 복음서에 공히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다. 중요한 인물이란 뜻이다. 무엇으로 중요한가? 그리스도의 매장(埋葬)과 관련 있다. 정확히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 사이에 정위된 위치로서 중요성이다. 대부분의 종교적 열심은 부활에 매몰되거나 죽음에만 매몰되기 마련이다. 죽지도 않고 부활하려들거나 부활을 조건으로 죽는 행태이다. 위서 속의 아리마대 요셉 나는 아리마대 요셉입니다. 빌라도에게서 주 예수의 시신을 장사 지낼 수 있게
헬라어 기초 강의 2021년 버전입니다. 이 동영상 강의는 회원 가입만으로 사용가능한 콘텐츠입니다. 이 사이트에 있는 기존의 헬라어 기초 강의 시리즈는 일반 가입 회원에게는 제한되어 있으나 이 시리즈에 한해 공개합니다. 올해 2021년판 강의 라이브를 새롭게 녹화중에 있습니다. 이 동영상 강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영상 강의 개요 성경 헬라어의 특징 성경 헬라어가 당대 헬라어와 어떻게 다른지 특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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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기독교의 투쟁적인 면모를 감안하면 사랑이라는 근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주제를 꺼내기가 민망할 정도이지만, 그러나 좋은 게 좋은 것이 결코 기독교 사랑은─ 그것이 아가페이든 필레오이든 ─아니라는 점에서 요한복음의 필레오 관한 몇 가지 특수한 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일단 한 줄 요약 해놓고 시작하면, 이 요한복음의 필레오 용법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기에 몹시 어려워진다는 사실이다. 구약에서의 아가페 사랑과 필레오 사랑
필레오 사랑─구원받기 어렵게 만드는 요한복음의 필레오 더 보기 »
코넬리우스 호니우스의 한계 코넬리우스 호니우스(Cornelius Hendrickz Honius)은 1440년생 헤이그 출신으로 1524년 4월 경에 사망하기까지 네덜란드 남부 델프트에 살았으며 네덜란드 법정의 변호사로 일했다. 호니우스는 델프트(Delft) 지역에서 루터파로 알려진 도미니칸 수도사 바우터(Wouter)의 설교를 들었는데, 그의 설교는 호니우스에게 “진리의 영감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이것은 1510년 경에 일어난 체험일 것이다. 호니우스는 1517년 이후로는 로마 카톨릭을 분명하게 배격했다.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Desiderius Eras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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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는 인간의 삶을 ‘여정’(Living a Nomadic Life)의 한 양상으로 정의하는 방식의 원형이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는 지엽적이지만 그들의 선조가 광야에서 남긴 종교적 의미는 오랜 세월 보편화 단계를 거쳤기 때문이다. 그들의 광야 생활 40년에서 가장 극적인 고난의 순간이 담긴 장면은 민수기 21장 4-9절일 것이다. 20장부터 이어져 온 고통스러운 상황의 귀결이 위로와 보상보다는 불순종의 전형으로 표본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천국과
‘십계명’이란 말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 아마 다들 “‘출애굽기 34장 28절이나 신명기 4장 13절이나 10장 4절에 나오는 ‘십계명’은 뭐냐?”라고 할 것이다. 그것은 단지 아쉐레트 다바림(עֲשֶׂ֖רֶת הַדְּבָרִֽים) 곧 ‘10개의 말들’이지 미츠바(מצוה)나 호크(חוֹק)나 미쉬파트(משפט)가 아니다. 계약법을 미츠바, 종교 계율을 호크/후카, 사회법을 미쉬파트라고 분류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우리에게는 ‘십계명’으로 알려진 이 ‘아쉐레트 다바림’(10개의 말)은 약간 다른 개념이다. (그래도
창세기 9장 무지개에 대한 오해 상징이란 무엇인가. 기독교인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분들의 단골 질문 중 하나가 바로 무지개(와 홍수)의 상징에 관한 질의이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다.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다시는 물로 멸하지 않는다고 했으면서, 그 표식이 무지개라면서 어찌하여 여전히 홍수가 발생하느냐는 것이다.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