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moon

Text에 집중할 수 있는 예배. | the righteousness of God | Since April 8, 2012.

이승만 타임지 커버스토리(1950)─6·25전쟁 발발 3개월후

타임지 이승만 커버스토리:이승만은 국부인가? 이승만이 TIME지 커버스토리 모델이 된 것은 총 2회이다. 한 번은 1950년 10월 16일 그러니까 6·25가 터진 뒤 3개월 후이고, 또 한 번은 1953년 3월 9일, 즉 정전협정 4달 앞두고서이다. 이 글은 그 첫 번째 편이다. 두 번째 편을 이 글을 참조. [역자주] 원제: Father of His Country?발행일자: Monday, Oct. 16, 1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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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벧에돔의 홍안(ruddy)에 관하여

    흔히 사울에게서 다윗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과정은 머릿속에 잘 새겨져 있는데, 그 사이 하나님의 법궤가 어디서 어디로 옮겨 다니는 지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편이다. 법궤를 블레셋에게 한 차례 빼앗기긴 하는데 그 시점이 언제인지도 혼동하기 일쑤이다. 심지어 사울이 죽는 시점에서 법궤를 빼앗긴 줄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아마도 엘리 가문의 몰락과 사울 가문의 몰락이 흡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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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요나단은 동성애가 아니야

    이 글은 미국이 동성결혼 합법화에 성공함에 따라 거기서 사용된 법리와 판례가 이제 전 세계 동성애 합법화의 시금석이 될 것이 자명한 시점에서, 단지 그들을 기이한(queer) 어떤 것으로만 일관하던 기독교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될 지에 대해 쓴 글이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카이스트의 한 교수가 자기 홈페이지에 노골적인 안티-크리스천 운동을 펼치면서 ‘다윗과 요나단이 동성애였다’는 장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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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설교를 이겨내는 성서일과

성서일과로 설교를 했을 때 과거(3년 전)의 논지와 지금의 논지 변화를 비교해본다. 신경숙 작가로 인한 문학계의 표절 이슈와 함께 기독교계에서도 표절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목회자의 설교를 놓고 표절 운운한다는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해 아래 새 것 없기 때문이다. 설령 표절해서 이익을 본다 하더라도 그 목회자의 영은 궤멸할 것이다. 독창적인 설교를 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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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홍안(ruddy)에 관하여

 이 글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신다고 했지만, ‘붉은 빛 아름다운’(삼상 16:12) 다윗을 (외모로) 선택하시는 모순된 장면에 관해 풀어 놓은 글이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는 말은 사무엘이 사울을 대신할 ‘새 왕’을 캐스팅하러 갔을 때에 나온다. 사실 사무엘은 첫 눈에 다윗의 큰 형 엘리압을 낙점했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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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사람과 속사람’ 설교할 때 흔히 저지르는 실수

    이글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표제 ‘겉사람과 속사람’에 관한 메시지가 별다른 주석 과정 없이도 성서일과에 의해 달라지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달라졌다기 보다는 원래의 의미인 것이다. 다음은 이번 주 성서일과 고린도후서 4장 16-18절 본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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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은 이교도(Ἑλληνιστής)였는가

  이 글은 초대교회의 처음 균열과 그 균열을 가르고 지나간 성령 자신의 길, 그리고 그 모든 궤적 중심선상에서 시그널로 작용하는 ‘방언’ 또는 ‘바람’의 텔로(θέλωㅡ임의로)를 정리한 글이다. 따라서 이글은 앞서 작성했던 파라클레토스는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나와 노우호 목사의 악령 방언(γλώσση)설은 다 옳은가? 그리고 성경의 괴물 ‘리워야단’과 홉스의 「리바이어던」과 연장선상에 있다. (1) 초대교회의 분열 초대교회가 직면했던 화급한 문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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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동성애

    이 글은 동성애를 용인하고 묵인하는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쓴 글이다. 동성애 합법화의 저지선은 대개 관습적, 생물의학적, 심리학적, 법학적, 신학적 단계로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했던 심리학적 저지선이 무너짐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각종 친 동성애 법안 개정과 발효에(동성애 결혼법, 차별금지법 등) 가속도가 붙은 상태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 저지선은 교회와 신학일 텐데, 도리어 일부 목회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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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클레토스는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나

  이 글은 초대교회 원시 공동체들의 성령 인식 과정, 특히 요한복음 공동체만이 독창적으로 인식했던 파라클레토스를 요약한 글이다. 우선 이번 주 성서일과 시편 가운데 이런 대목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1) 성령강림절 성서일과에 웬 악어가 선척이 거기 다니며 주의 지으신 악어가 그 속에서 노나이다 ㅡ시편 104:26 앞서 여러 차례 리바이어던 관련 글을 통해 성경에 나오는 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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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를 곡해한 영화 위플래쉬(Whiplash)

    친애하는 친구분들이 감동을 많이 받은 영화인데, 위플래쉬에 대해 좀 미안한 비평을 해야겠다. 거기서 나오는 주인공 선생님이 가장 혐오스러워 하는 말, “Good Job!”(참 잘했어요)라고만 말하는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lol~ 위플래쉬(whiplash)는 채찍질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형편없는 작품이지만 가능성 있는 부분을 캐내어 발견해주고 그곳을 집중적으로 칭찬해주는 방법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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