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사순절 (4/40) 공유할 수 없는 아버지의 이름

    * 하나님의 이름을 공유할 수 없음에 관하여   매일묵상/ 2016년 2월 13일 토요일   본문: 27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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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사순절 (2/40) 사십 수

    * 모세는 80세가 되도록(40년 동안) 어떤 마음이었을까?   매일묵상/ 2016년 2월 12일 금요일 (어제 제2일차 분)   본문: 30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31 모세가 그 광경을 보고 놀랍게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가 있어 32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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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귀에 관한 기독교인의 오해 (눅 4:38-44)

  * 이 글은 자기를 퇴마사로 여기는 기독교인이 흔히 간과하는 부분을 담은 글이다.   매일묵상/ 2016년 1월 27일 수요일   본문: 27 왕이 두루마리와 바룩이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기록한 말씀을 불사른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8 너는 다시 다른 두루마리를 가지고 유다의 여호야김 왕이 불사른 첫 두루마리의 모든 말을 기록하고 29 또 유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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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한 세례 (고전 1:3-7)

    * 교회 분쟁은 어떻게 피어나는가 / 세례에 대한 간사한 마음 / 세례의 통일성 ㅡ   매일묵상/ 2016년 1월 19일 화요일 본문: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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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새 관점’으로 둔갑한 ‘헌 관점’

    이 글은 대부분의 칭의 논쟁에 있어 일체 간과되어 버린 전제 요소들(이를테면 히브리서 Πίστις의 배경)을 요약한 글이다. 우선 다음 표로 구성된 개요를 자세히 관찰하고, 부연 설명을 읽으면 좋다. 1) 유대교가 원래는 은혜의 종교였다는 사실은 (어떤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 어느 정도 구약에 관한 개론이 들어선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구약에 관한 개론이 없는 학자가 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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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사탄이 된 원래의 경위

    이 글은 예수님에 대하여 가장 이상적인 신앙고백을 했던 장본인 베드로가 곧바로 사탄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경위에 대하여, 특히 마가복음에 보존된 원 자료를 분석해 설명한 글이다. 일반적으로는 마태복음을 통해 이 이야기의 교훈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는 고백에 성공함으로 ‘천국의 열쇠’는 손에 쥐었지만, 사람의 일 곧, 수난 받다가 죽으시고 부활하신다는 예수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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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룟유다는 택함 받은 제자인가?

    이 글은 요한복음에서 엿볼 수 있는 (구원에 관한) 예정론 문제를 간략하게 개진한 글이다. 우선 다음 문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ㅡ요 6:70. 예수님이 하신 말씀인 이 문장은 ‘주님은 마귀도 택하시는가?’ 라는 당혹스런 문제를 안겨주는 문장이다. 위 개역개정은 의역이 된 편이지만 본래는 아래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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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슈아인가? 예수인가?

예슈아. 최근 고토신학을 추종하는 이들 중심으로 예수가 아니라 예슈아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급부상하고 있어 몇 가지 유념할 것들을 급히 정리하였다. 예수를 버리고 예슈아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는 다음 포스터에 잘 요약된 것 같아 우선 옮겨왔다. 그러면 상기의 주장이 왜 빈약한 근거인지 설명해 드리겠다. 다들 익히 알다시피 예수는 여호수아(יהושוע)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본명은 호세아(הושע)였다(민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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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벧에돔의 홍안(ruddy)에 관하여

    흔히 사울에게서 다윗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과정은 머릿속에 잘 새겨져 있는데, 그 사이 하나님의 법궤가 어디서 어디로 옮겨 다니는 지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편이다. 법궤를 블레셋에게 한 차례 빼앗기긴 하는데 그 시점이 언제인지도 혼동하기 일쑤이다. 심지어 사울이 죽는 시점에서 법궤를 빼앗긴 줄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아마도 엘리 가문의 몰락과 사울 가문의 몰락이 흡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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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요나단은 동성애가 아니야

    이 글은 미국이 동성결혼 합법화에 성공함에 따라 거기서 사용된 법리와 판례가 이제 전 세계 동성애 합법화의 시금석이 될 것이 자명한 시점에서, 단지 그들을 기이한(queer) 어떤 것으로만 일관하던 기독교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될 지에 대해 쓴 글이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카이스트의 한 교수가 자기 홈페이지에 노골적인 안티-크리스천 운동을 펼치면서 ‘다윗과 요나단이 동성애였다’는 장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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