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신학

모르드개는 왜 마르둑(Μαρδοχαῖος)이 되었나

에스더서의 개요를 흔히 이렇게 요약을 한다. 1. 왕비가 되는 에스더(1-2장) 2. 하만의 음모(3장) 3. 하만의 죽음: 전복된 음모(4-8장) 4. 부림의 축하(9-10장) 그러나 이는 핵심이 결여된 요약이다. 하만의 통쾌한 죽음만을 이야기 절정으로 보는데서 기인하는 오해이다. 대다수 독자의 기억에서도 그럴 것이다. 하만이 자기가 만든 사형 도구에 자기 목 매다는 것이 이야기 결말인 줄로. 하지만 그것은 9장의 내용을 회피하고 싶은 심리에서 비롯되는 에스더서에 대한 미완의 이해이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유대인이 펼치는 대학살극에 서려있다. 그래서 에스더서는 단아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은 매우 잔혹한 이야기라 할…

“사람을 낚는 어부ㅡ”라 하신 적이 없다 (2)

올해 가장 이의를 받았던 주제에 관해 연휴기간 짬을 내어 잠시 부연하고자 한다. “사람을 낚는 어부ㅡ”라 하신 적이 없다 ㅡ 라는 주제이다. 이는 널리 일반화된 표현에 대한 꽤 자극적인 제목이었지만, 글의 논지는 ‘문자’와 ‘기호’ 간에 일어나는 해석의 문제였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문자는 변치 않지만 기호와 해석소는 변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진리가 변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이해를 하는 해석자들의 해석이 변한다는 뜻이다. 일차적으로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표현은 해석의 결과이지 본래의 표현이 아니다. 문자 자체는 본래 ‘사람들의 어부들’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아니라. 그런가 하면…

욥기 33장 23절, ‘해석자’인가 ‘중보자’인가.

욥기 33:23에 나오는 <해석자>라는 말이 개정판에서는 <중보자>로 바뀌었는데 어느것이 맞느냐는 질의에 대한 견해. 이 본문이다.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해석자>로 함께 있어서 그 정당히 행할 것을 보일찐대” – 개역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중보자>로 함께 있어서 그의 정당함을 보일진대” – 개역개정 여기서 <중보자>로 번역된 멜리쯔(מֵלִ֗יץ)는 ‘조롱하다’라는 동사 루쯔(לוּץ)의 히필형 동사에서 비롯된 분사이다. 조롱을 하다가 어떻게 ‘중보자’라는 분사가 될 수 있었느냐, 그것은 그 조롱이 말을 더듬는 대상에서 유래하였기 때문이다. 히브리어 동사 히필형의 특성상 ‘말을 더듬다’에서…

한국 개신교는 부활의 종교인가?

개혁의 이름으로 자행된 총신대 사태, 사랑의 교회를 향한 집요한 공격, 동성애 합법화를 위해 평등으로 위장하고 들어오는 성(性) 관념들, 이념에 오염된 그릇된 토지 사상. 교회를 향한 이러한 도전들은 믿음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다”라는 저 확신만큼이나 의심으로 얼룩진 한국 개신교의 자화상을 반영한다. 과연 한국 개신교는 부활의 종교인가? (죽지도 않고 부활하겠단 소리로 들려 묻는 말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부활이란 본래가 의심 속에서 그 자리를 굳건히 세운 투쟁의 산물이지, 어떤 일회적 마술쇼에서 비롯된 것이 결코 아니었다는 성서의 증언들은 우리에게 그나마…

“사람을 낚는 어부ㅡ”라 하신 적이 없다

이 글은 전문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쓴 글이다. 전공자나 신학적인 기반이 좀 있는 독자의 경우 신학적 문제가 작동한다면, 보다 전문적으로 쓰인 이 글까지 읽어야 한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ㅡ” 이 말씀은 아마도 우리 모두에게 가장 익숙한 성경구절 중 한 말씀일 것이다. 그러나 미안한 말이지만 원래에는 “사람을 낚는 어부” 라는 말이 없다. 사람을 어떻게 낚는단 말인가. 단지, 할리에이스 안트로폰(ἁλιεῖς ἀνθρώπων), “사람들의 어부들”이 되게 한다 하셨을 뿐이다. “사람을 낚는 어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는 이 과잉된 표현은 마치…

이스라엘인, 히브리인, 유대인은 같은가 다른가?

‘이스라엘인’, ‘히브리인’, ‘유대인’은 같은 말인가? 다른 말인가? 사실상 이음동의어로 사용하고 있고, 또 역사적 문맥에서도 이 셋은 동일한 의미로 서술되지만 각각의 고유한 의미는 다른 것이다. 이 ‘다르다’는 사실은 ‘같다’는 사실 이상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왜 중요한가 살펴보자. 1. 이스라엘인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그가 다투다’, ‘싸웠다’, ‘힘썼다’는 동사 사라(שָׂרָה)에서 비롯된 ‘이스라’(יִשְׂרָ)와 하나님의 칭호 ‘엘’(אֵל)이 합쳐서 된 말이다. 즉 “그가 하나님과 싸웠다” 또는 “하나님과 다투었다”는 뜻이다. 하나님과 어찌 싸우고 다툴 자가 있겠는가. 그 만큼, (하나님과) 승부로서의 강력한 은유가 내포된 것이다. 즉,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은 하나님과 투쟁하는…

시므온(Συμεών)에 관한 기호와 해석

해석이란 무엇인가? 해석이란 길을 내서 걷는 일과도 같은 것이다. 나는 유년 시절에 생각하기를 사람이 오랜 세월을 살다보면 이 세상의 모든 길을(심지어 골목길까지) 한번쯤은 반드시 밟고 지나가게 될 것이라 여겼다. 그것이 헛된 망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쯤 인간은 누구나 매우 한정된 길과 공간을 맴돌다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무수히 많은 지식을 접하고 경험하고, 무수한 지식을 재가공해 발화하지만 그 형식이 실은 제한된 길만큼이나 한정되어 있다. 무수히 많은 동사가 있지만 ‘나’, ‘너’, ‘그(들)’ 따위의 한정된 인칭에 막혀 그 동사가 지닌 경험들은 간소화되고…

바리새인은 좌파였다 (II)

과거에 “바리새인은 좌파였다 (1)”는 글을 썼을 때 수많은 친구들이 떨어져나갔다.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지만 바리새인이 좌파였다는 사실은 매우 학술적인 관찰의 결과다. 이 글에서는 전편에 다소 생략했던 내용들을 조금 더 기술해놓았다. 예수님 당대에 유대인의 당파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사두개파, 바리새파, 헤롯파(당), 열심파(당), 에세네파 정도가  있었는데 이들은 사실상 일종의 정파(政派)였다. 왜냐하면 헤롯당을 제외한 대부분의 당파가 하스모니아 가문(예수님 당대 통치 세력 기반)이 통치하는 것에 반대하여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기독교 전반에 대한 개혁적 인사들이 흔히 우파 인사들을 향하여 ‘바리새인’이라고 지탄하는 것을 많이 들을 수…

일흔일곱 번(77) 용서해야 하나, 일흔 번씩 일곱 번(490) 용서해야 하나

    이 글은 희년의 본질을 밝히는 글이다. 부활절의 성립은 유월절에 근간을 두고 있지만, 궁극적 실천은 희년(禧年)에 뿌리를 두고 있다. [희년의 범주와 근거] – 매매 된 토지 환원 (레 25:29-34) – 노예의 해방 (레 25:39-41, 47-54) – 부채 면제/ 채권, 채무의 소멸 (신 15:1-3; 레 25:35-37) [희년의 유래 및 취지] – 유배 시대 및 유배 끝에 작성된 사제문헌(P) – 빚으로 종 된 이스라엘의 해방(포로기 체험) – 친족 구조 보호 – 떠나지 않도록 성서에서 표출되는 희년에 대한 기대는 실로 지대한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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