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신앙

613가지 율법 전문

‘613가지 율법’이란 제식화된 명칭은 아닙니다. 출애굽 광야 생활에서 도출한 것이라는 전승이 있지만 신빙성이 없습니다. 613가지 율법은 사실 후기 유대이즘의 성격을 더 반영합니다. 10계명을 확대하는 성질을 가진 유권 해석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성질을 통해서 후기 유대이즘 종교 지도자는 교권을 장악했습니다. 이에 비하면 ‘신약’은 축소지향적입니다. 이것이 당대 유대이즘과의 충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정점에 있는 10계명이 과연 반 […]

613가지 율법 전문 더 보기 »

기독교는 왜 전도해도 줄어들어

차별금지법은 좋은 법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 절대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기독교인이 차별금지법의 저항력을 완화하려면 차별을 하지 않으면 된다. 예를들어 무슬림에게 전도를 하면 그가 모욕으로 느끼는 것은, 기독교인에게 이슬람교를 전도했을 때 모독으로 느끼는 것에 상응한 것이다. 자기는 모독으로 느끼면서도 무슬림 개체만 싸가지 없는 악한 놈으로 간주한다면 본질상 차별일 것이다. 그들 권역 밖에 살면서 무슬림을 싸가지 없는

기독교는 왜 전도해도 줄어들어 더 보기 »

결혼식만큼 장례식

    과거 평신도 신분으로 교회 행정 일을 본 적이 있다. 첫 번째 한 일이 교회의 조직 세우는 일이었다. 환경미화부, 복지부, 경조사부, 성례부.., 이런 식으로 나누어 교회 유지들을 분임케 하는 것이었다. 당시 결혼식과 장례식을 경조사부에서 맡고 있었던 것을 나는 장례식만 떼어다가 성례부에 분류를 해놓았다. 그랬더니 대뜸 성례부를 맡고 있는 양반이 “장례는 성례가 아닙니다!” 하며 교회

결혼식만큼 장례식 더 보기 »

말도 없이 사라지는 이유

  처음 이곳에 이사왔을 때 과일과 떡을 돌렸다. 예배 때문에 시끄러울까봐서사실은 지네들이 더 떠들어 이다. 위, 아래, 옆집 다 돌렸는데, 옆집에서만 답방이 왔다. 아주머니께서 딸기까지 사들고. 그러면서 아내에게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다나? 우아, 대단히 친절한 사람들이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한동안은 격조있게 잘 지내었다. 어느날 저녁에 애들이 밖에서 들어오면서 소스라치게 놀라며 뛰어들어왔다. 집 앞에 누가 속에 있는

말도 없이 사라지는 이유 더 보기 »

안녕하세요!

미문(美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 동안 구글 블로거를 사용했으나 목록 보기, 검색 목록 등 구독하기 불편하시다는 말씀들이 있으셔서 여기에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구글 블로거는 각 게시물의 공유자들이 많으신 관계로 폐쇄 하지는 않고 열어 놓겠습니다. 대신 새 글은 이곳에서ㅡ.  아직 이전 된 게시물들의 행간 자간 상태가 안정적이지 못합니다. 짬을 내어 계속 손보겠습니다. 많이들 활용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과

안녕하세요! 더 보기 »

노우호 목사의 악령 방언(γλώσση)설은 다 옳은가?

노우호 목사의 악령 방언(γλώσση)설은 다 옳은가? 이것이 이글 본 주제는 아니지만 성서일과에서 공교롭게도 방언 부분을 지나기에 요즘 이슈가 되는 노우호 목사님의 방언 관련 주장을 함께 검토하고자 한다. 처음 이 분에 대해 생각할 때는 단순한 반(反) 은사주의자 정도로 선입견이 앞선 게 사실이지만 이 분이 나름대로 전면적인 반 신사도 입장을 취하다 그만 그 총체적 시각 속에 방언까지

노우호 목사의 악령 방언(γλώσση)설은 다 옳은가? 더 보기 »

당신은 문서 예언자가 되십시오

    어제 내가 이번 학기에 맡았던 클래스들 가운데 구약학을 듣던 한 여성 전도사께서 교회 개척을 하신다고 해서 다녀왔다. 그녀에게는 치유와 예언의 은사가 있다. 나는 그녀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은사는 고결하게 간직하되 억제하고 결코 쓰지 마시라-고 권면했다. 그러고는 다음 두 가지 자료를 건네주었다. 하나는 내가 지난 해 7월경에 작성한 주석 문건 하나였다. 고린도전서 14장에는 방언과 예언

당신은 문서 예언자가 되십시오 더 보기 »

세월호, 기독교식 구원의 문제

    ※ 이 글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모두가 그랬듯이 세월호 사고의 충격 여파로 다분히 감정에 젖은 가운데서 구원론에 관한 회의적 시각을 담았던 글이다. 그러나 3년이 흐르면서 상처 받은 사회의 다양한 격변 속에서, 진리란 왜 불변해야 하는지 깊은 반성으로 수정을 가하였다. 세월호 침몰로 인한 국민적 슬픔이 사흘도 안 되어 양분된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었다. 적지 않은 목회자들까지

세월호, 기독교식 구원의 문제 더 보기 »

기도의 응답을 즉시로 듣는 방법에 관하여

하나님의 응답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가르치는 소리를 들어왔다. “Yes,” “No,” “Wait.” 그러면서도 언제나 응답은 사실상 “기다림”(Wait)이라는 합의 결론으로 종용해오는 바람에 응답 구하는 당사자는 그 기다림을 볼모로 시간과 물질을 착취당하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칼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 가운데 1:16-17의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대목에서 그 세 가지 응답의 실체가 무엇인지 소상히 밝혀진다. “<믿음에>라 함은 하나님 그분의

기도의 응답을 즉시로 듣는 방법에 관하여 더 보기 »

우리의 오만이 그것을 설계했다.

.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나타나나니”(롬 1:18) 라는 말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나타내는 본질적 속성을 표현한 말이지 다른 게 아니다. 그것은 특히 부활을 중심에 놓았을 때 이쪽 편, 우리를 나타내는 특질이다.곧,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계는 불.의.하.다. 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를 때, 우리가 말하는 것들을 잘 알고 있다고

우리의 오만이 그것을 설계했다. 더 보기 »